あらすじ
“말해 봐. 너도 좋았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눈앞이 캄캄해져 갔다.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뭐라고 하지? 어쩌지?
복잡한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다 작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 기억 안 나.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당황스러워.”
나를 쳐다보는 승준의 눈에 절망의 빛이 비치자 나는 잠시 이긴 것 같아져서 으쓱해졌다. 하지만 갑자기 엎드려 있던 내 몸이 휘리릭 뒤집혔다.
“뭐라고?”
“필름이 끊겼나 봐.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촘촘한 속눈썹 아래에서 검은 눈이 나를 꿰뚫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뜨거워 몸이 오그라들 것 같았지만 지금 지고 싶지는 않았다.
“너 필름 끊기는 스타일 아니잖아?”
사실 필름이 끊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술이 약해서 많이 마신 적도 얼마 없었고, 최근엔 술이 취했던 기억조차 몇 번 없을 정도였다.
“요즘은 잘 끊겨. 난 전혀 기억이 안 나니까 너 혼자만의 기억으로 간직하든지 잊든지 맘대로 해. 아악!”
약간 힘을 줘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승준이 강하게 어깨를 내리눌렀다.
그의 얼굴에 씨익 악마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럼 다시 생각나게 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