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착각하지 마세요. 난 어린애도 아니고, 당신이 감싸 줘야 할 머저리도 아닙니다.
저 서류, 내 아버지 목숨값이고 내 원수예요. 내가 갚아야 할 몫이라고요!”
1997년 IMF. 돈이 곧 생사가 되던 핏빛 암흑가.
명동 사채 시장을 장악한 한지혁은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었다.
아버지가 진 막대한 빚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대학생 윤서진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채업자와 채무자.
절대 얽혀선 안 될 악연으로 만난 두 사람은
벼랑 끝에서 서로의 유일한 구원이 되기로 마음먹는데….
그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피를 뒤집어쓴 남자와 그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칼이 된 남자.
가장 완벽한 지옥에서 피어난 처절하고 눈부신 구원.
***
지혁의 손이 서진의 가슴이 아닌, 가늘게 떨리는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숨통을 조일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악력.
“도망치고 싶으면 지금 말해. 놓아줄 테니까.”
서진은 대답 대신 지혁의 붕대 감긴 어깨에 입을 맞췄다. 피 냄새가 섞인 비릿한 살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지혁의 뒤 목을 끌어안았다.
“안 도망쳐요. 죽어도 여기서 죽을 거예요.”
젖은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서진의 검은 눈동자가 지혁을 똑바로 직시했다. 눈꺼풀조차 미동하지 않았다. 그 시선은 지혁의 눈을 피하지 않고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미친놈.”
지혁의 입가에서 바람 빠지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투박한 손바닥이 서진의 뺨을 덮었다. 엄지손가락이 젖은 눈가를 느리게 문질러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