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판타지, 서양풍, 모험물, 용사공, 마왕수, 쌍방구원, 사건물, 상처공, 순진수, 착각/오해, 까칠공, 다정공, 미남공, 미인수
* 공: 알테르(오든)- 성격은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냉혈한은 아니다. 오히려 정이 많고, 표현이 서툰 다정함을 지녔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모난 성격이 아니었으나, 자라면서 그 성정이 일그러졌다.
* 수: 라그모르- 성격은 조용하고 담담하다. 감정 표현이 적은 편인데, 이는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과의 접점이 거의 없었기에 감정과 윤리의 기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은빛 빛줄기에 감싸인 채 태어난 ‘용사’와, 정체를 숨긴 채 산길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마왕’이 우연히 마주친다.
‘이 녀석은 마왕이다.’
용사는 본능적으로 마왕을 알아본다.
‘이 녀석은 용사다.’
마왕 역시 본능적으로 용사를 알아본다.
두 사람의 첫 생각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우선 내 정체부터 숨겨야겠어.’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같은 결론에 닿은 셈이었다.
***
“라그모르.”
“왜?”
“내 이름 좀 불러 줘.”
알테르는 그 손에 기대듯 고개를 낮췄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같은 높이에 놓였다. 붉은 눈동자가 눈을 감고 있는 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라그모르가 알테르의 또 다른 이름을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이마 위에 얹혀 있던 손을 조금 더 위로 옮겼다. 그의 손이 가을날의 밀밭을 닮은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
감고 있던 눈을 뜨자, 바로 눈앞에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있었다.
“왜 웃어?”
“네가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
“…그랬나…?”
“항상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했잖아.”
알테르는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기억이 있었던가. ‘용사’라는 이름 아래 요구받고 강요당하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청했던 기억은 아득한 곳에 묻혀 있었다.
“힘든 게 있으면 내게 말해. 도와줄게.”
“네가?”
마왕에게 도움을 청하라니.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제안이 이상하게도 거슬리지 않았다. 알테르의 입가에 짧은 실소가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