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12년 동안 남자 사람 친구였던 서우진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좋아해선 안 되는 상대를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이쯤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백일 동안' 여자 친구의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을 지켜준 고마운 친구였기에 유일한 여자 사람 친구였던 나는 도움을 주겠노라 수락했다. 그런데 녀석과의 데이트 이후 묘한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리보기〉 “……백일이면 되는 거지?” 지안의 말에 우진의 눈매가 옆으로 가늘어졌다. “우리가 사귀기로 한 기간 말이야. 오늘부터 시작해서, 백일 후면 끝나는 거지?” 여기서 더 밀어붙였다간 거부감만 커질 수 있기에 우진은 이쯤에서 일단 멈추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안이 그렇게 말을 걸어오니 오히려 벙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오늘 얘기가 나온 거니까.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는 걸로 할까?” “……어? 어.” 우진은 느릿하게 대답을 하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어, 그래.” 얘기가 일단락되고, 둘 사이엔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둘은 이런 침묵의 시간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러나 급작스레 전개된 상황에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 스르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럼 난 그만 일어날게. 너도 알다시피 집에 가서 다시 일을 해야 돼서.” “아, 그렇지. 넌 다시 마감을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맞아. 다시 마감을 해야 해서.” 지안은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 괜히 민망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일어났던 우진은 그녀가 겉옷을 챙겨 입는 걸 보고 타이밍이 어긋나 전해주지 못했던 목도리를 가져왔다. “목원이가 너 주라고 챙겨준 건데, 오늘에야 겨우 주인한테 주네.” “아, 목도리! 그래도 잊지 않고 챙겨줘서 고마워.” 우진에게서 목도리가 담긴 쇼핑백을 받은 지안은 이내 반달 눈매가 되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우진을 향한 것이 아니라 쇼핑백 안에 들어 있는 목도리. 정확하겐 그가 포스트잇에 써놓은 ‘지아니 것’이란 글자와 그녀가 좋아하는 캐러멜이 담긴 비닐봉지에 닿아 있었다. 자신의 눈높이에선 지안의 얼굴이 아니라 정수리가 더 잘 들어왔음에도. 우진은 그녀가 웃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에 찌르르 전류가 흘러드는 것 같았다. “……지안아.” “응?” 지안이 대답을 하며 고개를 들자 우진은 그녀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연스레 상체를 숙였다. “그냥 오늘부터 1일로 하자.” “오늘부터?” “응.” 왜 그런 거냐고 묻는 지안의 얼굴 위로 우진의 얼굴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놀란 지안은 어깨를 움츠리며 얼결에 눈을 감았다. 긴장하여 굳어버린 가녀린 어깨를 붙잡고서 우진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의 따스한 입술이 닿은 곳은 동그란 모양의 희고 예쁜 지안의 이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