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세상이 잊었던 전쟁이 끝났다.
위대한 제국을 상대로 37년이나 버틴 노르칸족 우두머리, 크누트의 목을 벤 것은 한 명의 젊은 여자였다.>
긴 전쟁을 끝낸 제 128기사단의 단장, 사하라 일라우드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수도로 향한다.
뛰어난 무위,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고지식하고 무감한 성격의 그녀는 난생처음 눈길을 잡아끄는 사내를 만나게 된다.
온통 반짝반짝, 희한하다 싶을 만큼 완벽한 외관의 황태자 체이샤.
오만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충심으로 똘똘 뭉친 사하라는 신선한 감흥을 일으키는데.
<발췌>
“네 밑도 끝도 없는 충성심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부황께서 그런 일을 하셨을 줄이야.”
체이샤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하라는 체이샤의 등을 보며 이 부분도 참 꿈같다고 생각했다. 체이샤는 꼭 사람 같지가 않아서, 넓은 등이나 긴 다리, 가볍게 쥔 주먹 같은 부분도 어딘가 꿈속에 존재하는 자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 달린 등불이 아름다웠고, 그 빛 아래 반짝이는 머리카락에 취할 것 같았다. 사하라의 풍부해진 감수성과는 별개로 체이샤는 심드렁한 투로 덧붙였다.
“그를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을걸. 기분파에 변덕쟁이시니까. 오늘 이렇게 예뻐해도 내일은 어떨지 모르지.”
황태자가 하기엔 제법 비틀린 충고였다. 사하라는 작게 웃었다. 당장 내일 그녀를 내친다고 해도 물론 상관없었지만 그걸 충고해주는 이가 체이샤라는 것이 웃겼다. 며칠간 같이 여행을 다녀본 바에 의하면 체이샤는 분명 부친을 닮았다. 외모가 아니라 성격적인 면이 특히 그랬다.
“저는 괜찮습니다. 당장 내일 버림받는다고 해도요.”
“거짓말.”
체이샤의 가벼운 부정에 사하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믿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곧 다시 불러준다 하셨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아무리 빨라도 두어 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공사다망하신 분이니.”
“그렇게나 빨리 말입니까? 몇 년은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몇 년을 기다릴 각오를 한 사하라의 입장에서 몇 달 정도는 너무나 빠른 독대였다. 기뻐하는 사하라를 두고 체이샤의 걸음이 슬쩍 느려졌다.
“폐하께 청한 것이 무리한 일이었을까 봐 걱정됩니다. 말단 경비라도 괜찮은데…… 혹여라도 폐가 될까 봐.”
“공을 세워 백작위를 받은 이에게 말단 경비직을 줄 수야 없겠지. 폐하보단 기병 장관이 고생일걸. 병사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스물한 명이나 되는 제 128기사단을 다 배치해야 할 테니.”
사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기사단 전체가 움직였으면 하는 것은 사하라의 소망이었고, 그녀의 부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사실 몰랐다.
“제 소망일 뿐이니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하튼 정말로 모든 게 그저 꿈같아서, 정말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습, 아.”
체이샤가 우뚝 멈춰 서는 바람에 고개를 숙인 채 걷던 사하라가 그의 등에 부딪치며 멈췄다. 체이샤가 자신의 등에 부딪친 사하라를 붙잡으며 돌아섰다.
어.
사하라는 눈을 깜빡였다. 체이샤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다 보이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눈앞에 보라색 눈동자가 있었다. 그의 눈매는 어딘가 차갑고, 서늘했다. 화가 난 것처럼 냉정한 시선에 어깨가 얼어붙었고 순간.
“네가 이렇게 말이 많은 줄 몰랐군. 뒤에서 정신 사납게 참새처럼 종알종알 떠들어대다니 말이야.”
체이샤가 낮게 말했다. 화난 건가? 왜 화가 났지? 목소리가 높았나? 너무 말이 많았나?
“죄송…….”
죄송하다는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체이샤의 입술이 사하라의 아랫입술에 닿았다. 아주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버드 키스. 아니, 닿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입맞춤이었다. 따끔할 만큼 저릿저릿한 잔열감이 아니었다면 착각이었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체이샤가 금세 한 발자국 물러났다. 닿은 적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떨어져 있었다.
어……. 사하라는 입술을 벙긋거리지도, 말을 이어나가지도 못하고 숨까지 멈춘 채로 그를 바라봤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제 조용하네.”
그는 놀라서 눈만 크게 뜨고 있는 사하라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꼴좋다는 듯이, 그렇게.
달 밝은 밤, 오크 본거지를 전멸시킨 사하라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만족스러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