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다시 시작하자. 한순간도 널 잊은 적 없어.”
“거짓말.”
“잊으려고 기를 썼어. 안 되더라. 잊는 것도 안 되고, 벗어나는 것도 안 되고.”
“난, 다 잊었어.”
“기회라는 거, 나한테 한 번만 줘.”
발화점이라고 말할 만한 계기 같은 건 없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가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입사 동기로 만나 전우애와 형제애로 똘똘 뭉친 관계 때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사귀자’라는 낯간지러운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서로가 같은 마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믿음은 진욱의 생일날, 어머니와 함께 찾아온 그의 ‘여자 친구’라는 여자로 인해 산산이 무너지고,
가영은 두 사람이 그저 ‘썸’을 타던,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음을 처절히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던 관계인데,
그녀의 세상은 철저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래서 떠났다, 그의 곁을.
그리고 5년 후,
가영은 우연히 기차 안에서 그와 재회하게 되는데…….
“사랑 뒤에 오는 그 느낌이 싫었어.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 그런 경험, 두 번은 안 하고 싶었어. 그런데 아니었어. 사랑 뒤에 오는 건 상실이 아니었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지.”
[본문 내용 중에서]
“미안했어.”
그녀는 담담하게 말하는 진욱을 올려다봤다.
“지난 일이잖아.”
“오래됐지.”
독백 같은 그의 말투에서 자조적인 체념이 느껴졌다.
“왜 그땐 말 안 했어?”
“무슨 말?”
“미안하다는 말. 기다렸었는데…….”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든 진욱이 후드를 눌러썼다. 휘날리듯 퍼붓는 눈발이 그의 뺨 위에 내려앉았다.
“상황을 그렇게 만든 내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어.”
“양다리라도 걸쳤던 사람처럼 말하네.”
가영이 머쓱한 표정을 감춘 채 애써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진욱 씨하고 내가 그런 사이였다는 얘긴 아니지만 말이야.”
“내 실수는 한 가지야.”
“실수라니?”
“어머니한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일.”
가영은 시린 삭풍이 휘몰아치는 소리를 들었다. 습습할 정도로 시린 바람이 텅 빈 가슴에 메아리를 울려댔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가영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듯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땐 그게 자존심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