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달칵. 누리가 침대 위로 내려선 순간 방문이 열렸다.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내가 스물이 되면, 그때 3년만 연애하자.” “연애?” “날 사랑해 달라는 말이 아니야. 그냥 연애를 하자는 거지.” 세 번째의 삶. 이번마저도 수포로 돌릴 수는 없다. 누리의 담담함 속에는 목숨보다 절박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 넌 날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가 동요하지 않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자 속모를 낯으로 그가 미소지었다. “너, 진심이야?” 서서히 반응을 보이는 그. 하여 그녀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기로 했다. “난 스물셋에 죽게 될 거야.” -발췌- "미소를 유지한 채 고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아니야?” “싫지는 않아.” “그게 뭐야.” “그럼 뭘 기대한 건데? 열렬한 고백?” 실은 그랬다. 누리가 아무리 타고난 포커페이스라도 행동과 말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저 퍼석한 반응만 아니라면 누리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는 지금껏 그가 겪어 온 사람들 중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나 너랑 연애하고 싶거든.” “…….” “앞으로 4년 뒤에 내가 스물이 되면, 그때 나하고 3년만 연애하자.” “연애?”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그때까지 넌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일 거야. 싫어?” “좀 당황스러운데.” “이해해. 처음으로 내가 열여섯답게 보인다는 것도 알고.” 스물이 되는 4년 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그때는 이런 말을 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기에. 열넷, 그가 돌아온 그날부터 2년 동안 그의 결정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확답도 주지 않았다. 더 다가오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시간이 없는 사람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날 사랑해 달라는 말이 아니야. 그냥 연애를 하자는 거지.” “구구절절 기막힌 말이군. 날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싫지 않다고 했지,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안 했어.” 천천히 미소를 거둔 그가 창틀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신기했다. 누리는 그의 가슴에 보이지 않던 스위치를 눌러 켰다.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꿈처럼 묘한 감정을 일깨웠다. 그가 말했다. “네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지금 중요한 건 내가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야.” “똑똑하네.” “적어도 네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관심이 있는 정도로 연애를 할 수는 없지.” 거절이었다. 첫 번째 삶에서는 대놓고 거절해도 그게 거절이라고 믿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음을 보여 주면 그도 알아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두 눈이 멀고, 두 귀가 먹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을 죽음으로 마감하고 세 번째 삶으로 회귀하고 나니, 그의 진심이 보였다. 그래서 누리도 더는 매달리지 않았다.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겠다.” “여기, 까지라니? 무슨 뜻이지?” “네가 안 된다니까 다른 사람 찾아봐야지.” “다른 사람이라…….” 고미가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짓눌렀다. “너, 진심이야?” “아닌 것 같아?” “아니, 진심인 것 같아. 그래서 뭔가 묘하다는 거지.” 무엇이 묘하다는 건지 누리는 되묻지 않았다. “이유를 들어 봐도 될까?” “난 스물셋에 죽게 될 거야.” “……뭐?” 고미의 안색이 조금 전보다 더욱 심각하게 굳어졌다. 복잡할 것이다. 그래도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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