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왕실과 궁궐의 꽃, 초목을 관리하는 관아 ‘장원서(掌苑署)’ 기유년 사건을 파헤치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 그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장원서. 과연 위태로워진 장원서에도 따사로운 볕이 들 수 있을지……. 최연도 :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여인의 삶도 버렸다. 내시가 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복수심이지 타오르는 연정이 아니었는데……. 이종산 : 놀라우리만치 차갑고 놀라우리만치 잘생겼다. 여인만 보면 벌레 보듯 피하고 오로지 꽃과 나무만 끼고 사는 사내. 그저 조용한 삶만을 꿈꾸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명령들이 떨어졌다. 장원서로 부임하라는 어명, 그리고 내시로 살고 있는 여인(?)을 곁에서 보살피라는 숙부의 엄명이……! 이융 : 조선의 왕세자이자 희대의 악녀 폐비 윤씨의 아들. 아둔한 척하며 남몰래 이를 갈던 그가 드디어 숨겨두었던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조로울 줄 알았던 복수극. 그러나 뜻하지 않게 문제가 생겨버렸다. 웬 내시 놈 하나를 괴롭히는 일이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본문 중에서- 연도는 순간 숨을 멈췄다. 장원은 그저 풀잎을 만지고 있을 뿐인데 왜 그녀의 귓바퀴가 간지러운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온실 안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저토록 유려하게 움직이는 손길로 대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홀린 것일까? 풀잎이 수액을 뚝뚝 떨어뜨리며 녹아내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가슴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았다. 목구멍이 계속 타들어 가는 것이 더 이상은 그녀로서도 무리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 어찌 된 일인지 마음 한구석에서 뜻 모를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정녕 미친 거야? 대관절 뭐가 아쉽다는 거야! 정신 차려, 최연도. 저치는 장원이야!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한 사내. 장원서의 장원이라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숨 막히는 여정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장원의 다리 사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때 한양의 청적삼이라 불리던 사내다. 초목을-혹은 그와 비슷한 사람을-저리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손길이라면 그 소문도 영 헛소문은 아닐 터. 연도는 바짝 마른 자신의 입술을 슬쩍 핥았다. 그때, 종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도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의 중심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종산은 연도가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자신이 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마주한 그녀의 시선이 이상한 곳을 향해 있었다. 그가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던 연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도 고개를 숙였다. 지난 십 년간 단 한 번도 일그러진 적이 없던 장원 이종산의 얼굴에 드디어 변화가 일어났다. 이 가짜 내시가 지금 내…… 내 그곳(?)을 보고 있는 것인가?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들여다볼 태세로군.” 연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그녀의 입술이 생선 아가리처럼 쩍 벌어졌다. “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별로 현명한 대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원의 눈동자에 얼핏 장난기가 스쳤다고 느꼈지만 그것 또한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자네의 눈길은 지나치지 않고?” 결국 연도의 얼굴이 잘 익은 석류처럼 붉게 익었다. 건조해진 목구멍이 뻣뻣해지자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리고 또다시 예의 그 빈정거리는 듯한 장원의 말투가 귓가를 스쳤다. “……싫군.” 종산은 그렇게 말하며 연도를 지나쳐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