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나라님이 무화과(無花果)를 예뻐하셔
나라님은 무화과를 좋아하셔
설익은 줄도 모르는 무화과를 품고 계셔
눈 나리고 꽁꽁 언 발 어쩔 줄 모르는 설국(雪國)의 아씨는
염치없이 풋 무화과만 보며 눈물을 흘리네
나라님이 무화과를 예뻐하셔…….
설국의 여인 혜원(暳媛)
약소국에서 태어난 왕실의 핏줄이라는 죄로 허울뿐인 비(妃)가 된다.
아름답지만 아둔하지 않다. 부드럽지만 유약하지 않다.
정략혼을 통해 혜원을 비로 맞이한 거침없는 왕세자 호(好)
원하는 것을 다 가졌지만 딱 한 가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혜원의 진심이다.
소유하고 싶다. 그뿐이다.
형님의 여인이자 나라의 왕세자비를 연모하는 순(純)
아바마마의 편애와 왕위까지 형님에게 빼앗겼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혜원만큼은 빼앗길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그녀 하나 뿐이다.
처연한 운명의 장난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연민, 소유, 집착.
-본문 중에서-
“마마. 봄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벚꽃입니다.”
순은 혜원의 말을 듣기나 한 것인지 벚꽃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덩달아 혜원마저도 그 벚꽃에 시선을 빼앗긴다.
“중전마마. 꽃이 만발하여 금방이라도 눈꽃이 나릴 모양입니다. 그러니 자리를 비우지 마시고 잠자코 이곳에 계시옵소서.”
“눈꽃이요?”
“예, 마마. 일전에 말씀 올리지 않았습니까. 4월의 벚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러나 대군,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은 몸에 바람이라도 들면 어쩌시려고…….”
“눈꽃이 나립니다, 마마.”
과연 부드러운 춘풍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바람이었다. 가루처럼 곱고 꿀처럼 달았다. 볼에 닿는 봄바람이 아찔하기 그지없어 혜원은 하마터면 환호성이라도 지를 뻔했다. 때마침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봄바람을 타고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혜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눈꽃이구나.’
혜원은 감동하는 마음을 얼굴로도 숨기지 못했다. 두 손을 그러모아 흩날리는 꽃잎을 담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쓴 만큼 꽃잎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천진해지기로는 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꽃이 정신없이 내리는 절경을 한두 해 보고 자란 것도 아닐 텐데 처음 본 소년처럼 함박미소를 지었다.
“대군,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쩜 이것이 눈꽃이란 말이지요.”
“눈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마마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대군……. 사람을 놀리면 못씁니다.”
의아하고 놀란 얼굴로 순을 바라보는 혜원에게, 순은 방금 잡은 눈꽃잎 하나를 혜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청초한 선홍빛으로 물든 꽃잎이었다. 혜원은 그 꽃잎을 한 번, 순을 한 번 번갈아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마. 지난겨울 저에게 말동무가 되어 달라 하셨지요. 송구하오나 그 부분 불충하여야 함을 용서하십시오.”
“…….”
“마마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 하면 열 번이라도 내어 놓겠고, 아무도 살지 않는 섬으로 떠나라 하시면 두 말 않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마마의 벗이 되어 달라는 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소인은 마마의 벗이 될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제가 실수라도 한 것이 있는지요.”
“이 세상에 연모하는 여인과 벗으로 지낼 사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바람이 분다. 아무 말이 없는 순과 혜원 사이로 수많은 눈꽃이 날렸다가 연못으로 떨어진다. 마주 본 두 사람을 대신하여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야단스럽게 흩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