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너 언제 가는데.”
벌써 새벽 한 시였다.
“나 보내게?”
“안 가게?”
“자고 가도 되지?”
“뭘 물어 자고 가면 되지.”
같이 하루밤을 보내도 결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이.
“너 이만 닦고 끝낼 생각은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발도 닦을 건데”
보란 듯 선 자세 그대로 세면대 위로 발을 올렸다.
“아, 쫌.”
"뭐. 왜."
눈 앞에서 볼일 보는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남자.
그런데.
“왜 또.”
뭐가 또 불만이냐는 듯 웃는 윤이. 그럴 리가 없는데. 쟤가 객관적으로 좀 생긴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절대로 제 취향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보일 리가 없는데.
“아이스크림 사줘?”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린데 왜 이렇게 다정하게 들리지?
윤이 피식 웃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섹시해 보인다.
내가 오늘 씻었던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붙잡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매일 입던 잠옷은 왜 이렇게 구려보이지? 잔뜩 튀어나온 무릎이 오늘따라 거슬린다.
세상 편했던 남사친이 이상하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나 진짜 얘 왜 좋아하지
#나도 장난 없으니까
#그것만 했겠어?
#짐승 맞습니다
#이게 아닌데
[미리보기]
“씻지?”
“내 피부가 워낙 예민해서 자주 씻어주면 안 돼. 물 부족 국가인 이 나라에서 하루 두 번 이상 씻는 건 대단한 사치란다.”
아무 말이나 내뱉고 육포를 씹는 그녀를 향해 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기생충 봤지?”
“봤지.”
분홍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지금 내 카드 내역에 니 지분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 줄은 아냐? 그 뿐이야? 거실하고 냉장고는 이게 내 집인지 네 집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카드고 뭐고 다 박멸해버리기 전에 씻고 와 빨리.”
진짜 이게. 기생충? 기생~충~? 하지만 윤의 카드에 얼마간 기생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 조용히 입을 다문 그녀는 대신 옆에 앉은 윤의 다리위로 발을 쭉 뻗어 올렸다.
“새 구두 신었더니 발 더럽게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
“양심상 발은 씻고 내밀지?”
“깨끗해. 그거 스타킹 오늘 첨 신은 거라.”
“스타킹 원래 한 번만 신는 거 아니고?”
허벅지위에서 꼼질대는 발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돈이 썩었냐? 넌 바지 한 번 입고 버려? 구멍 뚫릴 때 까지 신는 거지. 그리고 이거 기모 스타킹이거든? 비싸. 만 원짜리야.”
“…….”
이상한 답이긴 한데 바지에 비교하니 뭐라 반박할 수 없는 그였다.
“근데. 나 진짜 매력 없냐?”
“아까 전에 닷사이 한 병 깐 거로는 부족해?”
닷사이 한 병 뿐인가 사케를 몇 병을 마셨는데. 미간을 좁힌 윤이 물으며 발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자, 계속하라고 허벅지 위에서 발을 콩콩댄 그녀가 말했다.
“나 지금 심히 진지하거든?”
“나도 내 카드 값에 진지해 지려고 하는데.”
“씻고 올께”
“머리도 어제 감은 거 알아. 감고 나와.”
귀신같은 새끼. 투덜거린 분홍이 욕실로 들어가기 전 뭔가 생각 난 듯 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 팬티 이틀짼데. 니꺼 좀 빌려줘.”
“…….”
나 진짜 얘 왜 좋아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는 거 같은데.
작가소개
밀다
세상의 모든 달달한 글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