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20대의 초반에는 소개팅이라는 단어로 시작했던 만남이 30대에 가까워질수록 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간다. 얼굴, 성격, 학교를 우선시하던 조건들도 직업, 연봉, 집안을 우선시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선 자리는 조용하고도 격식 있게 이뤄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입이 닳도록 말한 것 같지만, 굳이 한 번 더 말해 주자면 난 집안끼리의 결합은 절대 사양이다.”
겉만 봐서는 완벽해 보이는 남자. 수많은 여자를 만나 왔고, 잠자리를 가졌으나 정작 제대로 된 사랑도 연애도 못해본 그.
“너도 알잖아, 난 죽어도 연애결혼 할거라구.”
그 힘들다는 임용고시를 통과해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를 사용하는 여자. 정작 핸드폰 배경에는 연인 대신 40여 명의 학생들과의 단체사진이 박혀 있으나 연애결혼을 꿈꾸고 있는 그녀.
전혀 맞을 것 같지 않는 그녀와 그가 ‘선’이라는 단어에 얽히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그 남자야. 선 자리에서 바람맞힌 남자!”
설아가 잔뜩 날카롭게 세운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슬쩍 지연의 귓가에 속삭이기 전까지 그녀는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내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 한 단어.
‘선.’
그 한 단어를 듣기가 무섭게 지연은 핸드폰으로 받아들었던 사진 속 남자와 바로 눈앞에 실사로 서 있는 남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진 속보다 실물이 더 멋져 보였지만,
“그 개자식?”
그 순간 지연에게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수영장이라는 장소 탓에 지연이 빽 하니 내지른 목소리가 꽤나 크게 수영장 안을 울렸다.
덕분에 자유 수영을 하던 사람들도, 수업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모두 지연에게 시선이 쏠렸으나 지연에게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푸……푸하하하!”
갑자기 뒤편에서 웃음보가 터지기 전까지는. 바람은 지연의 입에서 개자식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개자식이라니. 천하의 최호진이 개자식이라니. 말 그대로 배를 잡고 뒹굴 일이었다.
지연은 싸늘한 시선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을 곁눈질한 뒤 빠르게 호진과 마주 봤다.
지연과 호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었다.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시죠, 최호진 씨?”
“오랜만에 수영하러 왔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인사나 하려고 왔는데…… 개자식 인사는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군.”
“물론이죠. 전 사람이랑만 인사라는 걸 하거든요.”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건지 대꾸하는 지연의 표정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