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때문에 내가 혼자 남았어.’
남자가 진정 불행해지기를 바랐다.
“사라져줘요. 내가 바라는 그것 밖에.”
어떻게 해서라도 이 남자를 불행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죽을 것만큼 아프고 미치도록 슬퍼서
남자에게 자신을 던져버린다.
‘왜 전화를 안 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날 불행하게 만들 거라면서?’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기 위해서.
그래야만 떠난 이를 대신해 끝까지 살아낼 수 있으니까.
여자의 파괴적이고 지독한 슬픔을 기꺼이 몸으로 받아냈다.
그녀의 숨결, 교성, 흐느낌, 특히나 칭칭 휘감겨 오는 그 촉감과 압력을.
그녀의 지독한 슬픔이 기어이 그의 몸 안에서 희석될 때까지.
#야구방망이가 거기서 왜 나와?
#묵직하게 쑤욱 끝도 없이 그렇게 들어와
#몸 안을 빡빡하고 홧홧하게 채우기
#섹스의 끝이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그래
#슬픔도 섹스로 나누면 끝내 사랑이 되기도
[미리보기]
“네가 하는 무슨 짓이든 감당할 수 있다면, 내가 널 걱정해도 되는 거야?”
그날 남자가 그렇게 애원했다.
“왜요?”
그 남자를 죽일 듯 노려보며 물었다.
“그래야 살아질 것 같으니까.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남자 또한 자기 삶의 몫을 억지로 감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 결정이었다.
은오는 최선을 다해 이 남자를 원망하고 불행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이 남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을 걱정하는 동안.
처음에는 그저 슬픔을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원망을 날려버리고 싶었거나. 그때까지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날 이후 그 남자를 기억할 때마다 슬픔과 원망 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었다.
그 남자의 리듬과 비트.
‘나 미친 거지, 지금?’
물론 슬펐다. 슬픈데 하루 종일 그것이 생각이 났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상황이 더럽고 추한데 자꾸 생각이 났다.
굵고 길고 단단한 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쑤욱 들어와 자궁 입구에서 퍽 부딪친 순간이 도저히 잊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 이러면 안 되잖아?’
지금도 이미 젖어버렸다.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생각하자마자 곧장. 순식간에 바지까지 축축해질 정도였다. 그것도 모자라 찌그덕, 찌그덕 찰박찰박 마찰음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짜, 뭐 같아.’
그뿐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몸 곳곳에 아직도 음밀한 밤의 향기가 났다. 그날 그 남자가 남기고 간 흔적들은 분명히 지워졌는데, 그 남자의 온기와 체취가 몸 어디엔가 스며들어버렸는지 그 냄새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누군 시간이 약이라던데 분명히 나아지겠지, 그런데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간절해졌다.
분명히 애도기간이었다. 은오는 그 누구보다 슬퍼하고 두려워해야만 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슬퍼할 수만은 없어서 더욱 더 미칠 것만 같았다. 유일한 가족을 잃은 것이 고작 한 달인데, 이러니 은오는 자신이 제대로 돌아버린 것 같았다.
남자가 그녀의 몸에서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리드미컬하고 빡빡하게 들어차던 비트가 나날이 더 선명해졌다.
수치심도 없이 묵직하게 쑥쑥 쑤시던 그 느낌이.
[목차]
#프롤로그
#1. 내려라. 내려서 다 씻어가 버려라.
#2. 히어로의 몰락
#3. 그래, 더 불행해져
#4.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남겨진 사람들
#5.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기 위해서
#6. 부둥켜안은 채 슬픔의 늪을 헤쳐
#7. 어느 순간 일상이 되어 슬픔 대신 그리움으로
#8. 골목길
#9. 슬픔을 같이 하는 것마저 사랑일까?
#10 그래, 너였어
#11. 네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져. 그래서 원한다. 원하고 또 원한다. 미치도록.
#12. 욕망이 열망으로, 열망이 끝내 사랑으로
#에필로그
작가소개
엣지
작가가 바라는 것은 엣지 있는 글, 삶.
출간 : 야들야들 보들보들 쫀득쫀득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