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진윤혜의 집 앞에서 멀뚱히 서 있는 것도 뭐해 강신과 빌라 근처 벤치에 앉았다. 아무것도 안했음에도 무언가 한바탕한 것 같은 느낌에 진이 빠졌다.
“난 그렇다 치고, 넌 죽까지 가져다주고도 쫓겨났네?”
“미안한 짓하고 있으니까.”
내 질문에 강신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사실 강신의 잘못이 내 잘못이기도 하다. 그걸 알면서도 나 스스로를 위해 모른 척, 순진한 척 영악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강신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녀를 좋아한다고 ‘치고’ 매일 집에 데려다주었다. 게다가 그녀를 만난답시고 나와 진윤혜와의 ‘약속’에 따라오기까지 했다. 또 그녀의 말에 죽도 가져다주고. 사귀자고…… 그러고 보니 강신이 고백했던가. 떠오르는 의문에 강신을 쳐다보고 물었다.
“고백했어?”
“망설이는 중.”
“그래?”
금방 그녀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보고 나왔음에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스스로를 외면하고 태연히 말을 이었다.
“진윤혜가 빨리…… 나 같은 놈 말고 널 좋아했으면 좋겠네.”
내 말에 한참을 침묵하던 강신이 느닷없이 입을 뗐다.
“……너 때문이야.”
“뭐?”
“난 진윤혜를 봐야 하는데, 한승민 너 때문에 자꾸 망설이게 돼.”
그렇게 말한 강신이 내게 손을 뻗어 왔다. 그리고 강신의 상냥한 손길이 내 왼쪽 볼에 닿았다. 난 그 손을 떼어 버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내가 왜?”
내 말은 무시한 채 강신이 계속 말을 이었다.
“몰랐으면 좋았을걸. 그랬으면, 처음 봤을 때 널 무시했을 텐데.”
내 볼에 닿아 있던 손이 느리게 움직이며 내 귀 뒤로 넘어갔다. 부드럽게 뒷목에 닿아 온 손이 빠르게 내 고개를 당겼다. 옥상 앞 계단에서 강신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을 때와 오버랩되었다. 저번과 달리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기습적으로 당한 것도, 강신이 내 손을 막은 것도 아니었지만, 내 손은 그를 떼어 놓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그 온기를 가만히 나눠 받고 있었다.
내 입술에 머무르던 강신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입술이 떨어지면서 쪽 하는 소리가 지난번과는 다르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 입술에서 떨어진 강신의 입술이 움직였다.
“널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이다. 네 입술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막지 않는 난, 날 정말 어떡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