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조종간을 잡은 그 장교가 행여나 뒤를 돌아보는 무례(!)를 범할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동안, 아샤의 함대가 정박해 있는 제 2군단 전투함의 관제실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샤가 도킹 스테이션을 떠나자마자 관제실로 들이닥친 알렉스였다. 자기가 잠시 눈을 팔고 있던 사이 아샤가 웬 장교 녀석 하나를 데리고 전투정을 타고 나갔다는 소식에 알렉스는 미친 듯이 뛰어왔지만, 이미 그의 단 한 명뿐인, 너무나 아름다운,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예측 불가능한 주군은 이미 권력을 행사, 무스펠하임을 뛰쳐나간 직후였다. “맙소사!” 너무나 황망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까만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아샤의 전투정을 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뭘 하시려고! 평의회 소집 소식에 무스펠하임을 탈출하신 걸까?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러실 분은 아냐, 도대체 왜! 알렉스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광통신 스크린도 제대로 열지를 못했다. 부들부들 떠는 손을 가까스로 움직여 스크린을 열고 그 문제의 전투정에 접속을 시도했다. “제길, 이 자식 통신을 아예 끊어놨잖아!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계속 성층권으로 올라가는데요.” 항법사의 무미건조한 말투에 알렉스는 그제야 집히는 바가 있었다. “하아, 정말…….” 알렉스는 그대로 계기판을 양 손으로 잡은 채 상체를 숙여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당장 무스펠하임 영해에 나가있는 군단 소속 해군함정들을 모조리 불러 소집해야할 판이었다. “해군 제독 어디 있나? 빨랑 호출해!” “예? 해군제독은 왜?” 항법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알렉스는 그대로 되받아쳤다. “떨어지는 거 받아야 할 거 아냐!” * * * * 그랬다. 아샤는 지금 성층권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다이빙 슈트로 갈아입은 그녀는 해치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고무줄로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지난번에 짧게 잘랐던 탓인지 머리가 잘 묶이지 않아 아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느슨하게 묶어 여기저기 머리가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괜스레 불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것 같아 한 편으로는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샤님……전투정 부유 상태로 해놓기는 했습니다만……도대체?” 조종 칸에 있던 장교가 자동정지 상태를 해 놓은 채 뒤로 넘어오려고 하자 아샤는 한 손을 들어오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해. 아참, 내가 떨어지면 다시 도킹 스테이션으로 들어가도 좋아.” “네? 떨어지신다고요?” 아샤는 놀란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그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주면서 귀에 무선통신용 이어플러그를 꽂았다. 이 녀석이 강하하는 동안 고도와 시간을 알려줄 꺼다. 아샤는 기압 조정을 위해 내부용 해치를 연 후 그대로 중간 공간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로 외부 해치가 열림과 동시에 고글을 내린 후 하강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스카이다이빙은 3천 미터 혹은 4천 미터에서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샤는 그걸로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짧았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성층권 끝까지 올라가는 방법. 대기도 없고, 우선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해면에 닿을 때쯤이면 낙하산으로도 조절이 불가능한 속도가 되기에 일반인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양 볼과, 온몸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공기 저항. 시속 100 킬로미터는 거뜬히 넘어가는 속도에 아샤는 두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그 속도에 내 모든 마음속의 응어리가 그대로 날아가길. 제발 부탁해. * * * * “잡았다!” 알렉스는 이미 무스펠하임의 외해에 있는 항공모함의 관제실을 장악한 채 미친 듯이 아샤의 낙하 위치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도킹 스테이션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항공모함에 굴러 떨어지듯이 착륙한 전투정을 뒤로 한 채 해군 제독의 거수경례도 받지 않고 관제실에 들어가 항법사와 항해사를 닦달해 얻은 결과였다. 레이더망에 하나의 점으로 포착된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해면을 향해 강하하고 있었다. “좌표 잡았나? 강하 지점이 정확히 어디야?” “아직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이 멍청이들! 그것도 하나 계산이 안 돼?” 알렉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모니터링 하면서 초조하게 아샤의 낙하 상태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샤는 낙하산을 쓰지 않는다. 그녀의 낙하 방법은 해면에 거의 다다랐을 때 무서울 정도로 올라간 속도를 신력으로 낮추어 가볍게 물속으로 다이빙 하듯 떨어지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만약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알렉스는 항상 아샤가 스카이다이빙을 한다고 하면은 그 생각부터 들었다. 어느 날 그녀가 그냥 이 신계와 작별을 하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맙소사! 아샤님. 속도 줄이세요!” 스크린을 잡고 있던 알렉스의 손에 하얗게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면에서 4킬로미터. 아샤의 속도는 이제 낙하산이나 다른 무엇으로 멈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샤님!” 2킬로미터. 이제 정말로 속도를 줄여야 할 때였다. “아샤!” 그러나 그녀가 속도를 줄일 기미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해면까지 1킬로미터.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아샤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아샤 아인하르트! 이 멍청이! 당장 속도 줄이지 못해?” 스크린을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는 알렉스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두들 군단장을 풀 네임으로 불러버린 이 사내에 대해 경악하고 있었지만 알렉스의 정신은 온통 아샤가 그 속도 그대로 해면에 부딪쳐 산산 조각이 나지 않았을까에 있었다. “제기랄!” 알렉스는 미친 듯이 질주했다. * * * * 아샤는 무서운 속도로 눈앞에 다가오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잠깐 ‘죽음’이라는 걸 생각할 수 있었다. 이대로 힘을 쓰지 않고 그대로 부딪쳐 본다면? 이걸로 신계와 작별을 할 수 있다면? 무스펠하임의 외해는 푸르렀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사실 속도를 줄일 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정도 스피드면 살기 위해서는 꽤 무리를 해서 급정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반동이 상당하겠는걸……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에 스쳐지나가는 얼굴은 왜 그리 또 많은지. ‘정말 멈춰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한 손으로 신력을 쓰려던 아샤는 순식간에 다른 어떤 힘에 의해 급제동이 걸렸다. 순간적으로 누군가 허리를 강하게 감아올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아샤는 급작스런 속도의 반동으로 복부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아샤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까닥했으면 죽을 뻔 했어. 너 때문에.” “왜 멈추질 않았지?” 신경이 날카로운 듯한 낮은 목소리. “멈추려고 했어.” “내장 파열되고 싶나?” “아아……멈추려고 했다니깐.” 아샤는 키안의 팔에 안겨 멈추려고 했다는 둥 말았다는 둥 실랑이를 하고 있는 자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의 존재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너, 나랑 도대체 얼마 만에 대화라는 걸 하고 있는지 알아? 아샤는 마지막으로 키안이랑 두 마디 이상 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포기했다. 그만큼 자신을 한 팔로 받아낸 키안의 존재는 비현실적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그의 검은 아메타스 자락뿐. “아직 전투 대기령 중이다. 무모한 행동은 허락할 수 없으니 그리 알도록.” 키안의 말투가 무미건조한 투로 바뀌었다. 상관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거다. 아샤는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풍덩‐! 키안이 신력을 풀자 아샤는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젠장. 나쁜 자식. 그대로 떨어뜨려 버리다니. 아샤가 수면 위로 올라와 첫 숨을 내뿜었을 때, 이미 키안은 사라지고 없었다.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며 아샤는 물 위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기분 풀려고 했다가 더 최악이 돼버리고 말았네…….’ 아샤는 가만히 그의 팔이 닿았던 복부를 만져보았다. 그가 받아주었을 때 생긴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팔이 닿았던 이유 때문인지 불에 덴 것 같이 아팠다. 통증이 뭐 때문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마음도 아픈 건가. 아샤는 계속 바다 위에 떠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맑았으며, 그리고 그녀의 눈에 계속 남는 그의 잔상이 떠돌아 다녔다.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억센 팔 근육, 검은 아메타스에 휘감겨 있던 그의 팔이 눈에 남았다. 낮고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지만 강한 그의 목소리의 울림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팔이 닿았던 허리 근처는 불에 덴 듯, 신경이 올올이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조용한 한숨만 나와 아샤는 눈을 감아 버렸다. 알렉스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유미르에서는 아샤 다음의 제 2인자는 알렉스였다. 혹자는 전쟁 직후 유미르의 행정에 흥미를 잃어버린 아샤 때문에 알렉스가 제 1인자 뒤에 있는 실질적인 1인자라고 속삭이는 사람도 있었다. 제 2계급 신족이면서 군에 입대하자마자 실력으로 아샤의 부관자리를 차지한 남자. 짧은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한 쪽 귀에 걸린 얇은 황금 귀고리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아샤가 이끄는 군단 전체의 우상. 함선 갑판 위에서 알렉스는 허리를 내밀어 저 멀리 한 점으로 보이는 아샤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채 물위에 떠있는 그녀의 형체를 보며 알렉스는 ‘속이 타들어간다’라는 말이 뭔지 한 음절 한 음절 그 뼛속까지 느끼고 있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리를 보면서 알렉스는 그대로 더 낮은 갑판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샤는 물에 뜬 채 거대한 함선이 가까워져 오는 데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게 더 속을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는 아샤의 몸을 보면서 알렉스는 절망했다. 전쟁 직후 그녀의 위험한 분위기가 이것 때문이었나? 이런 거 때문이었어? 아샤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다가오자 알렉스는 그대로 한 팔을 뻗어 군복이 젖건 말건 상관없이 아샤의 다이빙 슈트의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함선 갑판 위로 끌어올려 버렸다. 알렉스는 아샤의 다이빙 슈트에 손이 닿자마자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따스한 체온에 맥이 뛰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생각나면서 알렉스는 그대로 그녀를 억세게 움켜쥔 채 갑판 위에 일으켜 세웠다. “으앗……. 왜 그래?” 아샤는 목덜미를 억세게 쥐고 있는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의 두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는 금빛이었던 것 같다. 아샤는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 녀석 왜 이래? 바닷물이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샤는 ‘수건이나 던져 줬으면……’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변함이 없었다. 저러다가 한 대 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자 아샤는 목을 틀어 알렉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였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목덜미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이 풀렸고, 아샤는 몸을 틀던 반동으로 비틀거린 채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헤어 나오려고 했지만 아샤는 알렉스가 자신을 두 팔로 꽉 안아버리는 걸 말똥말똥 두 눈을 뜬 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숨 막혀 이놈아. 수건이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지. “……그러다가 젖는다…….” “수건대신이라고 생각하세요.” “나 이런 큰 수건 싫어. 별로 깨끗해 보이지도 않잖아.” “매일 씻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담배 냄새나.” “만날 약에 절어 사시는 분이 무슨 말씀을!” 알렉스의 손이 어깻죽지 바로 아래를 따스하게 감싸 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샤는 그제야 이 부관 녀석이 걱정을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왜지? 그냥 평소대로 스카이다이빙을 했을 뿐이라고, 나는. 별로 과격한 것도 없었는데 이 녀석 왜 이렇게 걱정하고 있지? 아무튼 싸하게 담배 냄새가 나는 그의 검푸른 제복이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전함 갑판위에 서있는 그녀 때문에 조금씩 젖어가는 것 같았다. 장교 한 명이 그제야 수건을 건네주러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아샤는 알렉스를 밀쳐 버리고 그가 내미는 수건을 받았다. “뭐야, 그 눈은?” 아샤는 좋은 냄새가 나는 타월로 얼굴에 떨어지는 물기를 대충 닦으며 옆에 서있는 알렉스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알렉스의 황금색 눈동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아샤는 요새 저 녀석의 저 짙은 눈동자 색을 좀 자주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그래도 난 너의 주군이란 말이다. “왜 혼자 가셨습니까?” “네가 안 보이기에.” 아샤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은 후 샤워실로 가기 위해 갑판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설마 이상한 생각을 하신 건 아니시겠지요?” 알렉스가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경어만 쓰지 않았다면 혼내는 줄 알았을 거다. “무슨 생각? 설마 너 내가 그대로 속도도 안 줄이고 떨어져 내장 파열이라도 될 거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바다에 둥둥 떠다닐 거라 생각했니?” 아샤가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온몸이 물에 젖어 햇볕에 반짝거리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번쩍 불꽃이 튀었다. 알렉스는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따라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묻고 있었다. “쳇, 정말 이 남자나 저 남자나…….” 아샤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채 다시 갑판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평의회에 가기 전에 기분을 풀려고 했던 게 다 수포가 되고 말았다. “네? 이 남자나 저 남자라니요? 다른 사람 누구를 말씀하는 겁니까?” 알렉스가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집요하게 쫓아오면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키안이 받아줬다는 이야기는 못한다. “아 그냥 그런 게 있어.” 아샤가 한 손을 휘휘 저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아샤님!” 알렉스가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러도 아샤는 눈도 깜짝 안했다. 기어이 탈의실 안까지 쫓아 들어온 알렉스를 돌아보며 아샤는 그대로 다이빙 슈트의 앞 지퍼를 좌악 허리까지 내려버렸다. “더 듣고 싶어?” 알렉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화악 붉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슈트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벌어진 슈트 사이로 하얗게 물들어버린 것 같은 깨끗한 가슴살을 엿본 것 같았다. 빌어먹을! 알렉스는 나지막하게 쿡쿡 거리는 아샤를 뒤에 놔둔 채 꽝하고 탈의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런 주군이랑 말려서. 제길. 제길. 제길. 복도를 걸어가며 휘청 하고 넘어지는 그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장교들의 시선도 알지 못하고 알렉스는 화가 잔뜩 난 채 관제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 아이혼은 키안이 무스펠하임의 창공을 선회하고 있는 함선으로 돌아오자마자 짜증에 북받쳐 있는 그를 상대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이번에는 아샤님이 뭔가 일을 치신 것 같은데 도대체 두 분이서 뭘 하다 오신거야? 아샤님이 성층권에서부터 고공강하 — 아이혼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그게 그분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는 건 1계급 무장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 를 하러 갔다는 보고에 갑자기 키안님이 신경을 곤두세우시더니 해면에 가까워지는 고도가 돼서도 아샤님이 속도를 줄이지 않자 신력을 써서 그대로 받으러 가셨다. 아이혼은 스크린을 지켜보다 신력을 써서 사라져버린 키안님의 잔상만 황망하게 눈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같이 지켜보고 있던 아이혼도 스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해면 몇 백 미터를 남겨놓고 저 속도에서 급정거를 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샤님을 믿었다. 저 정도면 거뜬히 해내실 거라 믿고 여유 있는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그의 상관이 사라져 버린 거였다. 그리고 몇 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온 그의 상관은 눈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역시 아샤님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그 분이랑만 무슨 일이 엮이면 저런 표정이 되신다. “도대체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말 안 듣기는 정말 마찬가지야! 죽으려고 환장했어? 이 마당에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은 기분이 나냐고? 한 녀석은 지 혼자 뛰쳐나가서 뻗어 오더니,” 음. 이건 로키님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 것 같다. “제 멋대로 뛰어내리질 않나! 내장 파열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음. 이건 아샤님 이야기군. “제길!” 평소에는 별 말씀을 안 하시더니 드디어 화가 머리끝까지 터지셨나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얼음장같이 차가우시더니 이제는 불같이 화를 내시는군. 이해할 만도 했다. 루안 크랑젠의 등장에, 로키님은 그대로 뻗어버리셨지, 아룬카와의 혼사 문제도 해결이 안됐지. 벨켄의 반역 사건에, 전쟁 마무리까지도 제대로 안된 상태였고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 아이혼, 그조차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전면에 서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키안이야 오죽하랴. “그렇게 일일이 받아주시지 않으셔도 아샤님 정도면 괜찮으셨을 텐데요.” 아이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키안이 그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그를 쳐다보았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신호라 아이혼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다고! 아샤 정도면 가뿐히 서고도 남아. 그런데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위험한 분위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대신 엄청난 권태랄까, 무력감. 그리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가 버릴 것 같은 공허함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았다. 단순히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날카로운 감각이 경고를 계속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성층권에서 떨어진다는 — 세상에! 그런 위험한 짓을 그게 취미라고? — 소식을 듣고 나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기분으로 그녀의 강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받아들려고 하는 몸의 반응을 억누르느라 죽을 뻔 했던 것이다. 하아, 빨리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져야 돼. “평의회 보고서나 올려. 전략안도. 무스펠하임의 입장을 어떻게 밝힐 건지 시나리오를 있는 한껏 만들어오라고.” “예, 알겠습니다.” 아이혼이 고개를 깊게 숙이고 나갔다. 평의회. 평의회가 끝나면 해결할 테다. 키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