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예원은 아침 일찍 잠이 깨었으나 머리가 띵하고 눈이 뻑뻑했다. 선잠을 잔 까닭이었다. 그녀는 옆에 누워있는 채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의 예상대로 채형은 신혼 첫날 밤 신부를 같은 방에서 자고도 온전히 내버려 두었다. 마치 이 방에 혼자 자고 있는 듯이 깊이 잠이 든 채 말이다. 예원은 간사한 여자의 마음이 울컥하고 올라와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허울 좋은 남편인 금채형의 자는 모습을 한껏 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금채형은 그녀의 시험을 보란 듯이 통과해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원에게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이 결혼이 ‘거래’, 혹은 ‘연극’이라는 것만 여실히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원은 금세 그런 감정을 마음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그것이 당연하고 그래야 정상인 것이었다. 한참동안 채형을 노려보던 예원은 발코니로 나가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파란 겨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해서 혼자 보기는 너무나 아까운 아침 풍경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신랑이 깨어나 부드럽게 신부의 어깨를 감싸주던데. 예원은 고개를 돌려 침실을 슬쩍 쳐다봤지만 채형은 깊게 잠이 들어 일어날 줄을 몰랐다.
채형이 깨어난 건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눈을 뜬 채형은 숙취와 선잠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혹시나 자다가라도 예원의 몸에 자신의 몸이 닿을까봐 긴장을 했던 그는 편치 않은 잠자리에 온몸이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은근한 고통을 주는 허울 좋은 아내를 채형은 어느새 눈으로 찾고 있었다. 예원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채형은 서둘러 옷을 입고 예원을 찾아 나섰다. 한참을 찾다가 바닷가 바위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 예원을 발견한 채형은 왠지 안심이 되었다.
“정예원.”
예원이 채형이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그녀는 조금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 일어났어?”
“깨우지 그랬어? 오늘 관광해야 되는데…….”
“네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좀 그렇더라고.”
예원은 미안해하는 채형의 시선을 받아내다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채형도 한동안 말없이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조금은 서늘한 바람에 채형은 재킷을 벗어 예원에게 덮어주었다. 사실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채형은 절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