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그에게서는 잔인한 향기가 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함의 향기.
그를 왜 흑랑(黑狼)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황오색호접(胡蝶) 소유혜.
-본문 중에서-
유혜는 밝게 미소 지었던 표정을 굳히며 발길을 멈췄다.
‘저……사람?’
먼발치를 응시한 그녀의 눈망울에 어둠속에서조차 금세 알아볼 수 있는 검은 슈트차림의 남자가 비쳤다. 거만하게 팔짱을 끼우고 고급 승용차 운전석 곁으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눈살을 좁히며 자세히 주시해들었다. 컴컴한 저녁하늘을 향해 거만스레 턱을 추켜올리고 과묵하게 눈을 감은 남자. 흡사 깊은 산중의 높다란 바위위에 올라 푸른 달빛을 고요히 즐기는 한 마리의 검은 이리 같았다.
‘!’
유혜는 숨이 가빠져 올랐다. 저 남자가 이곳에 왜 있는 것일까? 혹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일까? 아니면 이 동네의 누군가가 또 그의 잔인한 도움을 받은 것일까? 아무쪼록 자신의 아버지에게만은 볼일이 없기를 바랐다.
‘설마……, 날 보러 온 건 아니겠지? 설마……. 다시 볼 일이 뭐가 있다고. 아닐 거야.’
자신을 만나러왔을 리 만무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왜 일까? 왜 이리 가슴이 촉박하게 뛸까? 종잡을 수 없이 심장이 덜컹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럴 가치가 없는데, 그가 누굴 만나러 왔던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닌데, 모른 척 지나쳐가면 될 일인데…….
‘나와는 더 이상 마주할 일이 없는 사람이야.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녀는 주책없이 예민해져버리는 정신을 가다듬고자 주먹을 그러쥐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왜 이렇게 발이 무겁지? 어서 가자, 어서.’
소리 없이 호흡을 고르는 채 그를 지나쳤다. 흑랑이 코끝을 스치는 그녀의 향기를 느끼고 턱을 내렸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맹렬한 눈빛으로 모른 척 멀어져가는 어린 여자의 모습을 고요히 지켜봤다.
두 사람의 거리가 다섯 걸음 정도 벌어졌을까?
“네 이름이 유혜라지?”
“!”
유혜는 온몸이 굳었다. 제 자리에 멈춰 서며 바닥에 놓인 커다란 눈망울을 위태롭게 뒤굴렸다.
‘날, ……보러 온 거였어?’
왜? 무슨 일로? 무슨 볼일이 남아서?
‘전 당신을 몰라요. 그러니 이대로 제 갈 길을 갈 거예요.’
서둘러 그의 앞을 벗어나야한다는 집념을 앞세우고 발악을 하듯 발을 떼었다. 그 찰나 그녀의 모든 판단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저음이 울렸다.
“내 여자가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