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철컥, 문이 조용히 닫혔다.공기 중에 떠도는 향기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그 체취가 손 안에서 허무하게 사라져 간다.찌릿, 심장이 뻐근하게 조여들었다.재하는 천천히 눈을 떠 공허한 눈길로 한참 천장을 응시했다.달빛이 비쳐든 어스름한 어둠이 적막한 공간 안으로 스며들어 있다.생각보다 더 많이 취했나 보다. 옅은 램프 불빛이 아른거리는 천장이 수많은 원이 되어 빙빙 돌았다.얼마나 술을 마셨던가.모든 것을 다 잊고 싶은 마음에, 눈앞에 놓인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 가는 대로 끝없이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몽롱한 의식 속에 점점 더 선명해지는 해인의 존재는 쓸데없는 지난 추억까지 끌어올리면서 그를 더 힘들게 했다.준하와 해인과 함께 했던 그때 그 순간으로.환하게 웃는 해인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자신을 바라보지 않아도 그 따스한 미소만으로 위로 받았던 그 시절로.재하의 입가에 쓴 미소가 번졌다.아주 잠시 들뜨며 설렜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해인의 모습에, 자신을 걱정하듯 바라보는 사랑하는 여자의 표정에.잠시 맛본 그녀의 따스한 온기에 눈물이 날 만큼 위로를 받은 자신이 슬프다.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그 작은 흔적마저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신의 모습이 서럽다.결국 달라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 여자를 향한 이 질긴 감정은 매 순간 더 단단해질 뿐이다.안다. 그도 자신이 덧없는 희망에 어떻게든 매달리려 하는 것을.그래, 이젠 정말 그녀를 놔줘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그녀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이 모든 것을 놓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그래, 어쩌면…….두 눈을 감자 그의 눈가를 타고 한줄기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