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산에는 왕이 하나였다.
고조선부터 조선까지, 인간의 왕조가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산의 왕좌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 왕이 죽었다.
오천 년을 곁에 둔 부하, 곰의 이빨에 목을 물려서.
그리고 눈을 떴다.
곰팡이 핀 단칸방.
폐지 줍는 할머니.
급식비 석 달 미납.
한 손으로 밀면 넘어갈 것 같은 열일곱의 몸.
발톱도 이빨도 없다.
남은 것은 오천 년 동안 왕으로 살아온 눈과 습성뿐.
영역을 정한다.
관찰한다.
급소를 찾는다.
그리고 단 한 번에 문다.
이 나라의 우리 안에는 포식자가 너무 많고,
저들의 이빨은 돈과 법과 종이로 되어 있다.
"이빨이 안 닿으면, 닿는 이빨을 기른다."
주먹이 아니라 기록으로.
위압이 아니라 사람으로.
골목에서 학교로, 법정에서 여의도로.
호랑이는 배운다.
혼자 군림하던 왕이, 곁을 얻는 법을.
시켜서 쓴 종이는 지고, 제 발로 낸 종이가 이긴다는 것을.
계란부침을 얹어주는 폐지 줍는 할머니.
삼 년 치 학교폭력을 공책 일곱 권에 적어온 투명인간.
평생 도망만 치다 오천 년 만에 왕 앞에 돌아온 책사.
왕이 거둔 것들이, 왕을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한편 배신자 곰은 이미 이 나라 어딘가에서
그늘의 왕으로 앉아 있다.
오천 년 만의 재대결.
표면은 선거, 실체는 사냥.
동굴에서 도망쳤던 호랑이가
가난과 굴욕과 기다림이라는 두 번째 동굴을 견디고
마침내 오르려는 왕좌는, 뽑히는 왕좌다.
산군이 산을 내려왔다.
이제 나라 전체가 그의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