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도면을 훔쳐 줄 수 있겠습니까?”
커피잔을 들어 올리던 정원의 손이 일순 바르르 떨려 왔다.
정원은 애써 입매를 당겨 웃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해신에 재입사해 도면을 만들고, 그것을 가져와 달라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면접을 보는 중인데요. 도둑질 제안을 받는 게 아니라.”
좋은 입사 제안이 왔기에 하늘이 아직 자신을 버리진 않았다 생각했는데.
이 사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언니가 많이 아프죠? 빨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병원비며, 이식 수술 때문에 골치가 아플 텐데.”
언니를 볼모로 잡다니, 이건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잖아.
게다가 그 회사와 또다시 일하라니. 그것도 모자라 도면을 훔쳐 달라고?
정원은 거절의 의사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말에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 아버지 민태산, 그 사람이 단순하게 사고로 죽은 것 같습니까?”
“네……?”
“나는 지금 민정원 씨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해신중공업의 더러운 민낯을 밝히고 그들을 업계에서 휘청이게 만들 수 있는, 복수할 기회.”
* * *
“처음 뵙겠습니다. 민정원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한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꽃처럼, 해신그룹의 회장 태경의 낮은 목소리가 응접실 안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다시 해신에 돌아오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뭡니까?”
“……네?”
“무슨 목적이 있어 제안에 응했냐,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왜냐고?
“해신이 저한테 돈을 제일 많이 준다고 해서요.”
언니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뭐든지 할 것이다.
어쩌면 그 행위가 눈앞의 남자를 속여 가시밭길을 걷게 되는 일이어도, 멈추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깊은 바다를 닮은 태경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정원은 깨달았다.
자신은 벌써 심해로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헤엄쳐도, 저곳에서 벗어나기란 힘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