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지음의 손은 늘 무언가에 절어 있거나 데어 있었다.
13살, 승제의 정혼자로 낙점된 그날부터.
“우리 승제가 네 김치만 먹잖니.”
“…….”
“가서 좀 챙겨라. 요즘 예민하더구나.”
이 집의 입맛을 맞추고, 비위를 맞추고,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것. 그것이……
지음이 15년 동안 배워 온 ‘며느리 수업’의 전부였다.
정혼자의 집 문틈에서는 교태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낮뜨거운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지음은 묵직한 김치 통을 들고 서 있을 뿐.
이 족쇄 속에서 그녀는 묶인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손이 엉망이네.”
그리고 꼭 10년 만에.
돌연 미국으로 떠났던 첫사랑, 권도혁을 마주친다.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초라한 행색으로,
부르튼 손끝에서는 마늘 냄새가 남은 채로.
“아직도 남의 집 조상 밥상이나 차리면서 살고 있나 봐?”
나는 이 결혼을 깰 수 없는데…….
“선배, 저…… 곧 결혼해요.”
“해. 누가 하지 말래?”
도혁이 지음의 귓가로 고개를 숙이며 낮게 속삭였다.
“한지음, 내가 누군지 봐.”
홧홧한 숨결이 닿는 곳마다 소름 돋는 감각이 자극됐다.
“난 네가 그 새끼랑 나를 좀 헷갈렸으면 좋겠거든.”
도혁의 눈동자 속에는 오만함과 굶주린 인내심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