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전국시대 말, 천하는 이름 있는 자들의 말로 움직였다. 왕은 천하를 말했고, 장수는 군율을 말했으며, 학파는 도와 법과 천명을 말했고, 사관은 남겨야 할 것만 남겼다.
그러나 이름 없는 자들의 칼은 기록보다 낮은 곳에서 움직였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는 승자만 남지 않는다. 굶주린 아이, 버려진 포로, 팔려 간 장인, 이름을 잃은 무인, 명분 아래 지워진 사람들이 남는다. 누군가는 그들을 장부에 적고, 누군가는 제물로 세우고, 누군가는 천하를 위한 필요악이라 부른다.
그런 시대에 한 무인은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협을 말하지 않고, 대의를 팔지 않고, 천하를 구하겠다 선언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이 도구가 되는 순간, 기록이 칼보다 먼저 사람을 베는 순간, 그는 낮은 길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합종연횡과 제자백가, 진의 통일과 봉선, 불로와 병법, 사관의 죽간과 거지의 입말이 뒤섞인 난세.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름 대신, 시대가 숨기려 한 칼자국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