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 무천
근본도 없고 하늘도 없어 무천이 아니라, 근본조차 하늘조차 상관없어 무천.
반도의 나머지 여섯 나라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기도국의 황제.
전쟁광, 살인귀.
작은 나라 주제에 그의 팔천기갑단을 넉 달이나 맞아 항전한 운향국을 멸망시키고 그곳 왕실의 하나 남은 핏줄, 공주 가진을 거뒀다.
목적은 단 하나.
아직 나라를 포기하지 않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너희가 미련하게 붙들고 있는 희망이 내 다리 사이에서 어떻게 짓이겨지는지 보여주고자.
그뿐이었다.
그러니 망국의 그 계집이 이토록…… 간절해지는 일 따위는 그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 설가진
기도국의 칼날 앞에 끝까지 항전했으나 결국은 패망한 운향국의 마지막 공주.
야차 같은 사내가 아무리 짓이기고 후벼파도 견딘다.
목적은 단 하나.
아직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는 이들에게 여전히 그네의 하늘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그뿐이었다.
그러니 살인귀 그 사내가 이토록…… 가엾어지는 일 따위는 그녀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 본문 중에서 *
티 하나 없는 살이었다. 목덜미, 어깨와 잘록한 허리와 골반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만큼 매끄러웠다.
황제가 공주를 향해 다시 한 발 내디뎠다. 공주가 다시 꼭 그만큼 물러났다. 황제가 쓰게 웃었다.
“제 사람들을…… 살려주십시오.”
가히 총명한 여인이로고. 아무도 믿지 않으니. 세 치 혀끝에서 나온 약속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알고 있으니.
눈앞의 정복자라면 더더욱.
황제가 피식, 웃었다. 역시나 쓴웃음이었다. 저 계집이 알아본다면 꽤 속이 쓰릴 것 같았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망국의 시녀들을 풀어주어라!”
장막 밖을 지키던 군인들이 존명, 우렁차게 대답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 발소리들이 멀어지며 공주의 얼굴도 어디론가 멀리, 아득해지는 듯했다.
오장육부가 끊어질 듯한 절규와 울음소리가 조금씩 멀어져갔다. 너무도 익숙한 이들의 것이었다. 지금 멀어지는 저 울음소리는 죄가 아니다. 지키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응당 이랬어야 할 것들. 고작 꽃 한 송이 지키겠다고 저리 무모하게 스러지면 안 되는 것들. 마땅히 살아야 할 것들.
공주는 이제라도 그것들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 공주를 보며 황제가 다시 한 발 다가섰다. 확인하듯. 이번에 공주는 물러서지 않았다.
참으로 셈이 밝은 계집이었다.
“우리의 수치스럽고 영광스러운 밤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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