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아메리카 대륙의 십자로, 파나마(Panama)로 떠나보겠습니다. 파나마란 국명은 원주민어로 ‘물고기가 풍부한 곳(abundance of fish)’ 혹은 ‘멀다’란 뜻의 바나바(bannaba)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합니다. 1821년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그랑 콜롬비아(Gran Colombia) 연방을 거쳐 1903년 독립하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포르토벨로-산 로렌소 요새(Fortifications on the Caribbean Side of Panama: Portobelo-San Lorenzo, 1980)’는 카리브해를 무대로 한 스페인 제국주의 시대의 경이로운 군사 건축미를 보여주며, 태평양 연안 최고(最古)의 유럽 정착지인 ‘파나마 비에호 고고학 유적과 파나마 역사 지구(Archaeological Site of Panamá Viejo and Historic District of Panamá, 1997)’는 아메리카 대륙의 파란만장한 식민 역사를 생생히 증언합니다. 인류의 물길을 연 토목 공학의 기적, 파나마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제국의 물길이 남긴 빛과 그림자, 트랜시티스모(Transitismo: The light and shadow left by the empire's waterways) : 파나마의 역사적 근원과 정체성을 해석하는 첫 번째 열쇠는 '트랜시티스모(Transitismo)', 우리말로 통과지상주의(通過至上主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식민 지배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물자와 인력이 스쳐 지나가는 지정학적 이점을 국가 발전의 유일무이한 동력으로 삼아온 파나마 특유의 구조적 본질을 의미합니다. 16세기 스페인 제국은 페루 등지에서 긁어모은 귀금속을 유럽으로 운송하기 위해 가장 짧은 육로인 파나마 지협을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파나마는 내수 기반의 농업이나 제조업을 키우기보다는, 외부 세력의 무역 경로를 보조하는 엔클레이브 경제(Enclave Economy, 飛地經濟) 시스템에 종속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교역망의 핵심 허브로 기능하고자 하는 이른바 '한자 동맹적 프로젝트(Hanseatic Project)'는 지배 계층의 확고한 통치 이념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지만, 동시에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동반했습니다.
▷ 세계화의 요새와 불평등의 궤적(Fortresses of globalization and the trajectory of inequality) : 트랜시티스모에 얽힌 선혈 낭자한 역사를 가장 뚜렷하게 대변하는 사적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나마 카리브 연안의 요새: 포르토벨로와 산 로렌소(Fortifications on the Caribbean Side of Panama: Portobelo-San Lorenzo)'입니다. 1980년에 최초 등재된 이 유적군은 스페인이 대서양 무역망을 사수하기 위해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걸쳐 쌓아 올린 군사 방어 시설의 정수입니다. 이탈리아의 천재 공학자 바우티스타 안토넬리(Bautista Antonelli)의 역량이 깃든 이 산호석 요새들은 헨리 모건(Henry Morgan)으로 대표되는 악명 높은 해적들의 파상 공세로부터 제국의 자본을 지켜내야 했던 치열한 전초기지였습니다. 특히 2024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기존 유적에 더해 카미노 레알(Camino Real, 왕의 길)과 카미노 데 크루세스(Camino de Cruces, 십자가의 길) 등을 모두 아우르는 '파나마 식민지 시대 대륙횡단로(The Colonial Transisthmian Route of Panamá)'로 확장 등재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국지적 교통망을 넘어 근대 글로벌 물류의 뼈대를 형성한 파나마 지협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국제사회가 다시금 재확인한 결과입니다.
▶ 생존을 위한 민중의 치열한 줄타기, 후에가 비보(Juega vivo: The people's fierce tightrope walk for survival) : 두 번째로 짚어볼 키워드는 냉혹한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파나마 서민들이 일궈낸 날 것 그대로의 생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후에가 비보(Juega vivo)'입니다. '기민하게 움직여라' 정도로 해석되는 이 관용어는, 일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틈새를 노려 개인의 이득을 쟁취하려는 파나마 고유의 기회주의적 생존술(機會主義的生存術)을 지칭합니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임기응변과 교묘한 우회로를 좇는 이러한 태도는 이방인들에게 단순한 부패나 비열한 꼼수로 폄하되기도 합니다. 허나 파나마가 지나온 질곡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이는 트랜시티스모가 낳은 절망적인 양극화 속에서 국가 체계로부터 완벽히 버림받은 밑바닥 계층이 제국의 거대한 자본에 짓눌리지 않고 명줄을 이어가기 위해 발달시킨 절박하고도 치열한 자기방어 기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 차별의 역사와 해학으로 승화된 민중의 저항(A history of discrimination and the people's resistance sublimated into humor) : 억눌린 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가장 사실적으로 고발하는 사료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린 '실버 맨: 파나마 운하의 서인도 제도 노동자들(Silver Men: West Indian Labourers at the Panama Canal)' 문헌입니다. 20세기 초입, 미국이 운하 공사에 박차를 가할 무렵 자메이카와 바베이도스 등 카리브해 일대에서 10만 명을 웃도는 흑인 노동자들이 이 살인적인 토목 현장에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운하 관할구역은 지독한 인종 분리 정책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미국계 백인 관리자들에게는 훌륭한 주택과 더불어 금화로 고액의 임금을 치르는 골드 롤(Gold Roll) 제도를 적용한 반면, 서인도 제도 출신 흑인과 유색인종 노동자들에게는 은화로 형편없는 일당을 지급하는 실버 롤(Silver Roll) 제도를 강제했습니다. 이들 '실버 맨'들은 황열병과 말라리아가 득실거리고 연일 산사태가 발생하는 쿨레브라 컷(Culebra Cut)의 끔찍한 진흙구덩이에서 생사를 걸고 곡괭이질을 했으나, 그들에게 쥐어진 대가는 차가운 경멸과 차별뿐이었습니다. 법과 제도가 오직 소수 엘리트 카르텔(Elite Cartel, 少數獨占體制)만을 수호하는 압제적인 체제하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더 이상 공권력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만적인 규칙을 비껴가고 매 순간 영악하게 활로를 모색하는 '후에가 비보'의 생존법을 체화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 진흙 속에 피어난 공동체의 연대, 훈타 데 엠바레(Junta de embarre: The community solidarity blooming in the mud) : 세 번째 핵심어는 앞서 다룬 이기적인 생존 투쟁과는 대조적으로 파나마인들의 따스한 인간애와 끈끈한 결속력을 증명하는 '훈타 데 엠바레(Junta de embarre)'입니다. 공동체 진흙 건축(共同體진흙建築)으로 직역되는 이 오래된 풍속은, 시골 마을의 이웃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흙과 지푸라기를 반죽하여 전통 가옥인 '킨차(Quincha)'를 세우는 상호 부조(Mutual Aid, 相互扶助)의 축제 한마당입니다. 트랜시티스모와 후에가 비보가 운하 주변의 냉혹한 자본주의적 경쟁을 대변한다면, 훈타 데 엠바레는 상업의 소용돌이에서 빗겨난 내륙의 촌로들이 거친 대자연에 순응하며 품어온 순박하고 이타적인 파나마의 얼을 상징합니다.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국경에 걸쳐 끝없이 펼쳐진 생물 다양성의 보고, '탈라만카 산맥-라 아미스타드 보존 지구/라 아미스타드 국립공원(Talamanca Range-La Amistad Reserves/La Amistad National Park)'의 울창한 수림은 마을 사람들에게 집을 짓고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튼튼한 덩굴과 땔감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포근한 요람이었습니다.
▷ 세대를 잇는 전통과 보편적 인류애의 교감(The communion of universal humanity and traditions connecting generations) : 전통 킨차 가옥을 짓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수일 전부터 냇물에 질긴 '베후코(Bejuco)' 덩굴을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묵직한 '마카노(Macano)' 목재로 집의 골조를 엮어냅니다. 이 축제의 절정은 물을 끼얹은 진흙과 마른풀을 맨발로 짓이기는 과정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깨동무를 한 채 한 줄로 늘어서서 흥겨운 박자에 맞춰 진흙밭을 행진하듯 밟아갑니다. 땀방울이 맺히는 고된 노동의 현장 곳곳에는 파나마 고유의 '탐보리토(Tamborito)' 북소리가 흥을 돋우고, 여인들이 정성껏 끓여낸 닭고기 국물 요리 '산코초(Sancocho)'가 아낌없이 공유됩니다. 훈타 데 엠바레는 단순한 주거지 확보를 넘어 노동이 유희로 변모하고 집주인과 하객의 위계가 사라지며 오롯이 서로를 향한 애정만이 흙처럼 단단하게 굳어가는 신성한 예식입니다. 이와 유사한 장인 정신과 협동의 미덕은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핀타오 모자(Pinta'o hat)' 공예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코클레(Coclé) 일대에서 채취한 벨요타(Bellota)나 촌타(Chonta) 같은 천연 섬유를 가공해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를 짜 내려가는 이 수작업 역시 철저한 가족 공동체와 마을 단위의 협업을 통해 수세기를 거쳐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 잊혀진 지혜가 전하는 내일로의 항해(A voyage to tomorrow guided by forgotten wisdom) : 지리적 숙명으로 드리워진 트랜시티스모라는 외세와 자본의 맹렬한 폭풍 속에서, 파나마 민중은 후에가 비보라는 영악하고 끈질긴 생존술로 모진 세월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현실의 이면에서는 훈타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