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그건 안 되겠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뽀얗고 말갛던 첫사랑 윤이월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입대했다.
지독한 짝사랑을 끝내기 위해 선택한 18개월의 공백.
하지만 복학 첫날, 1교시.
꾸벅꾸벅 졸던 책상 위로 쪽지 한 장이 놓여졌다.
[여전히 아침엔 정신을 못 차리시네요, 선배.]
잊을 수 없는 정갈한 필체.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건, 제 어깨춤에 닿던 그 아이 아니었다.
"너, 너… 키가 왜 이렇게 컸어?"
"글쎄요. 선배 안 계신 동안 밥을 좀 잘 챙겨 먹었나 보죠."
단정한 흑발 반곱슬 아래로 가늘게 휘어지는 고운 눈매.
어느새 187cm의 사내가 되어 저를 내려다보는 첫사랑.
강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예전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운 동생 취급을 하기엔,
제 손목을 움켜쥔 이월의 손아귀의 힘이 지나치게 단단하고 뜨겁다는 것을.
"선배, 저랑 밥 먹어요."
정중한 존댓말 속에 숨겨진 뒤틀린 정복욕.
번듯한 후배의 가면을 쓴 여우는 이제 도망칠 곳 없는 곰을 느긋하게 몰아넣기 시작했다.
윤이월 (22) / 187
"선배는 덩치만 컸지, 속은 되게 말랑할 것 같아요."
"제가 나쁜 짓을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아서... 그게 참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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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강진 (23) / 185
“이월아, 형 팔뚝 닳겠다. 무서우면 그냥 손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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