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특수학교에 진학했다.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러 조언을 듣고 고민한 끝에 나를 일반 학교에 입학시켰다. 장애가 심한 자녀를 일반 학교에 보내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중증장애인 딸을 돌보면서 딸이 왜 일반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지만,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다. 갈수록 커지는 불안과 압박을 감당하기 힘든 건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이 내게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에 자신감이 생겼고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는 기쁨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밝은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장애인이어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저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가 ‘에이, 아니었구나….’ 하며 괜찮은 척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고 국토대장정도 하고 싶었다. 행정고시를 염두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꿈꾼 미래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통증에 시달리는 중증장애인에게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더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
어릴 때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했다. 아파트 비상구에서 한 시간 넘게 안간힘을 쓰면 무려 네다섯 칸을 올랐다. 먼저 땅을 밟고 첫 번째 계단을 오른다. 첫 번째 계단을 디딤돌 삼아 두 번째 계단을 오르고, 다시 두 번째 계단을 디딤돌 삼아 세 번째 계단을 오르고, 또다시 세 번째 계단을 디딤돌 삼아 네 번째 계단을 오른다. 이제는 한 칸도 오르지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생의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돌아보면 지난 순간들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학창 시절의 모든 경험은 대학교를 성공적으로 다니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또, 대학교에서 다양한 경험과 배경, 그리고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미국에서 생활해보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교환학생 경험은 대학을 졸업하고 1년쯤 지나 도전으로 이어졌다. 미국에도 갔는데 프랑스라고, 스페인이라고 못 가겠어? 지난 시간은 할 수 있다는 근거였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파리-바르셀로나 여행은 어김없이 찾아올 멋진 순간의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부터.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