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일제가 들여오고 우리가 번성시킨 환락의 거리 우리나라 집창촌의 역사는 한때 아시아 최대의 매춘거리로 유명세를 탔던 부산 완월동 집창촌의 전신인 아미산하 유곽부터 시작된다. 개항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긴 성매매 업소들이 성병 예방과 풍기문란 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실시된 일본의 정책을 빌미로 점차 한 장소에 집중되어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첫 타자가 바로 아미산하 유곽이었다는 것이다. 한때 일본인만을 위해 운영되었던 이들 유곽은 철도의 발달과 함께 점차 조선 전국에 뿌리를 내리며 식민지 착취로 인한 빈곤에 시달리던 여성들과 자본주의적 성매매에 눈뜬 남성들을 빨아들였다. 저자는 성매매의 번성이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는 조선 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며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한다. 애인의 돈 때문에 팔려간 여자들의 사연과 포주에게 학대당하는 성매매 여성들, 등굣길에 있는 집창촌으로 인한 아동 교육 문제, 곤궁한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호황을 누리는 유곽에 대한 개탄 등이 게재되어 있는 당시의 신문은 그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인정한 공창과 불법업체인 사창은 성구매 남성과 성판매 여성 수 증가와 함께 날로 번성해가며 사회문화의 하나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일본에서 유입된 집창촌 문화가 한국인들에 의해 환락의 날개를 펼친 것이다.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주도산업 저자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를 ‘사창전국시대’라 명명했다. 일본 유곽이 있었던 자리들이 재빨리 사창가로 전환되면서 일제시대에 집창촌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집창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50년에 발발한 6.25도 성매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전쟁 때문에 더더욱 곤궁에 빠진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성 판매를 했고, 현실을 잊고 싶은 남성들은 성 구매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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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page
Kakaopage2019/05/17
  • 現在の作品유곽의 역사[단행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