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페이지
광복절이 언제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100년 전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일이 8월 29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말 그대로 치욕스러운 날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기념한다는 것이 언감생심이었던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 그러나 승리와 영광의 역사만큼이나 패배와 아픔의 역사 또한 기록하고 반추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팔봉 김기진이 말했듯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페이지’인 영친왕의 생애를 예사롭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영친왕이라는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 왕조의 몰락과 왕실 사람들의 말로,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대사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에 실어 들려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와 더불어, 황태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간 영친왕 이은 씨의 안타까운 운명과 인간적인 면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영친왕뿐만 아니라 그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님 고종과 형님 순종은 물론이고 덕혜옹주, 명성황후, 윤대비 등 왕가의 여인들, 그리고 의친왕과 이우 공을 비롯한 왕손들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는 쓸쓸하지만 때로는 흐뭇한 왕실의 뒤안길을 보여준다. 영친왕의 황태자비로 간택되었다가 파혼 당함으로써 평생 처녀로 늙었던 민갑완 여사,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말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평소의 소원대로 한국 땅에 묻힌 헐버트 박사의 뒷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이토 히로부미와 맥아더 같은 역사적 인물들도 선연이든 악연이든 영친왕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오사카 역에서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를 만난 것도 영친왕의 비극적인 삶에 방점을 찍는 장면이었다.
격조의 왕자, 침묵의 왕자
영친왕은 기울어진 나라의 운명처럼 신산한 삶을 살았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가 되어 조선의 제 28대 왕통을 계승했지만, 형님이자 선왕인 순종이 승하했을 때는 이미 나라가 사라져 계승할 왕위도 없어진 뒤였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갔고 일본의 왕족과 정략결혼을 했으며 1963년에 귀국할 때까지 50여 년을 일본에 머물렀다. 해방되기 전에는 일제의 볼모로 묶여있었고, 해방되고 나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견제로 귀국할 수 없는 신세였다.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성실한 영친왕은 황태자로서의 기품과 격조를 잃지 않았으며, 작은 일이라도 조국과 민중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늘 고심했다. 6·25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을 위해 『A First Book of Korean』이라는 한국어 교본을 저술한 일이나, 공부를 하려고 일본에 밀항한 청소년들을 구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쓴 일 등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영친왕의 담백한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제 3대 국회에서 ‘구황실 재산처리법’을 제정하여 고궁과 왕릉을 포함한 구황실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했다. 한국 정부는 심지어 도쿄에 있는 영친왕의 저택마저 (주일대표부 건물로 쓰기 위해) 국유라며 내놓으라고 우겼다.
뜻 있는 일본 변호사 한 사람이 막대한 구황실 재산의 계승자인 영친왕에게 소송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