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끈 한국 경제정책의 설계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기 수습에 진력한 국무총리, 다양한 이름으로 현대사 곳곳에 흔적을 남긴 신현확 전 총리, 그는 누구인가? 최연소 부흥부장관, 경제 개발 5개년계획의 입안자, 한국 경제정책의 설계자, ‘TK 인맥’의 대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기 수습에 진력했던 국무총리. 이 모든 수식어는 신현확이라는 한 사람에게로 수렴된다. 그는 1공화국부터 6공화국 초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 곳곳에 많은 흔적을 남겼으며,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역사 70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표현은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신현확이라는 인물을 설명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관료’다.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상공부 공업국 공정과장으로 발탁돼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국초에 국가 행정의 노하우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던 터라 일제강점기 때 일본 본토 상공성에서 근무했던 그의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상공부 국장을 거쳐 최연소의 나이로 부흥부장관에 임명된다. 3·15 부정선거 관련자 및 자유당 정권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구속·기소되어 2년 7개월간의 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3공화국 들어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으로 장관급인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으로 위촉된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장관으로서 국내에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시절에는 고도성장 일변도의 성장론에 제동을 걸고 경제안정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신현확은 1공화국에서 4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등용된 흔치 않은 사례로, 자연스럽게 경제 관료를 포함한 모든 관료들의 ‘대부’로 불리게 되었지만 그는 늘 스스로를 경제 행정가이자 관료로 규정했다. 신현확은 ‘한국 경제정책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경제 개발 5개년계획의 원안은 부흥부장관 시절 그의 주도 아래 만들어졌으며 이로써 한국 경제 개발정책의 모델이 마련되었다. 또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된 뒤에는 고도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 제동을 걸고 안정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인 성장을 강조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한국 경제정책의 기조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신현확은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관통해온 산증인이기도 하다. 10·26 직후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경제 부처의 수장으로 위기 상황을 수습했고, 12·12에서 5·18에 이르는 5개월 동안 국무총리로서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견제하고 막으려 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또한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사회 원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신현확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삶을 읽는 일은 곧 한국 현대사를 다시 읽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 안에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잘못 알거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국 경제 관료의 거목이자 역사의 산증인인 신현확 전 총리의 최초이자 유일한 육성 증언록이자 우리가 알고 있던 현대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줄 사료(使料)이기도 하다.

連載情報

単行本

配信言語
Kakaopage
Kakaopage2021/06/25
  • 現在の作品신현확의 증언 [단행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