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불안에서 해방되어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올려드리기, Give Up 하는 것
이 시대를 일컬어 ‘뷰카(VUCA) 시대’라고도 합니다.
‘뷰카(VUCA)’란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신조어로, 불확실한 미래를 뜻한다고 하네요. 원래는 1990년대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군사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야말로 급박하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가장 치열하고 무서운 현장입니다. 또 하나의 치열한 삶의 현장,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불리는 경제 분야에서 ‘전략’과 같은 군사용어와 실제 방법론들이 많이 차용되는 이유인 듯합니다. ‘뷰카’로 요약되는 이 시대의 특성은 과학기술이 제아무리 발달하여 만능 자판기를 손에 넣은 듯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라는 인간 역사 이래 변한 적이 없는 진실의 요약판이 아닌가 합니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은 여전히 앞날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뷰카’로 대변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Give Up.’
‘Give Up.’
한영사전에 등장하는 이 표현의 첫 해석은 ‘포기하다.’입니다. 그런데 한국어의 ‘포기하다.’라는 표현은 왠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여, 무엇인가 내 것을 억지로 내려놓거나 뺏겨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 제일 어려운 일이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 같아요. 그런데 영어 Give Up이라는 표현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성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중학교에 올라가 영어로 거의 처음 외웠던 ‘숙어’ 중 하나가 ‘Give Up’이었는데, 그 쉬운 표현인 ‘Give Up, 포기하다.’가 왜 그리도 잘 안되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제법 긴 시간을 돌고 돌아와 비로소 알게 된 듯했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의탁(依託)하셨다.’고도 번역됩니다. 이것의 영어 표현이 바로 ‘Give Up’이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었던 Give Up의 참뜻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제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알려주셨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수십 년을 그저 ‘Give Up, 포기하다.’라고 기계처럼 줄줄 외우기만 했던 그 단어가 어느 날 갑자기 제 눈에 박혔는지를 설명하기 참 힘드니 말입니다.
불확실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끊임없는 불안에서 해방되어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근원 되시는 창조주 아버지께 모든 것을 ‘올려드리는’, ‘Give Up’ 하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부족한 것투성이인 나이지만, 이 모습 이대로 ‘Give Up’에 관한 이야기를 ‘모호하고 불안한’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으로 제안해 보고 싶은 이유입니다. 무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창조를 다 마무리하시고 하신 일,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리하기를 원하시는 일, 안식. Give Up, 안식에 이르는 귀중한 실마리가 되기를 소망하며 캄캄한 물고기 뱃속 안에 있었던 요나처럼 기도해 봅니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내가 서약한 것을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요나서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