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사랑조차도 구속으로 느끼고 포기해버리는 여자.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억압을 느끼지 않고
죽음에서 조차 진심으로 자유롭고 싶어 하는 여자의 이야기.
『벨자를 쓴 여자』는 장병주 작가의 금지된 사랑(Unfaithful)에 대한 도덕적 논쟁과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마치 <죄와 벌>처럼 죄악과 속죄희구라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계속 솟아나는 꿈과 그런 꿈을 억누르는 벨자의 상징을 통해 한 인간의 열정과 생존이 참담하게 비극화되어가는 과정을 ‘피아노 치는 남자’와 ‘바이올린 켜는 여자’, 두 사람의 삶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으로 배치하고 절대로 이루어질 수도,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는 관계고리로 그려나간 한편의 불협화 협주곡이다.
출판사 서평
자유를 위한 혼의 비행
1. 비극의 문
금지된 사랑(Unfaithful)에 대한 도덕적 논쟁과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 “벨자를 쓴 여자”는 마치 <죄와 벌>처럼 죄악과 속죄희구라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계속 솟아나는 꿈과 그런 꿈을 억누르는 벨자의 상징을 통해 한 인간의 열정과 생존이 참담하게 비극화되어가는 과정을 ‘피아노 치는 남자’와 ‘바이올린 켜는 여자’, 두 사람의 삶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으로 배치하고 절대로 이루어질 수도,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는 관계고리로 그려나간 한편의 불협화 협주곡이다.
주인공 지후와 진희 그리고 그 사이에 방관자처럼 서 있는 성준 등 세 사람. 비극의 종장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삶에는 금지판도, 이정표도 없다. 문학작품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부정(Unfaithful)이라는 소재는 흔하디흔한 소재로써 식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가장 위험한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라면 한 번쯤 다루고 싶은 마약과도 같은 유혹적 테마이다. 작가는 그런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비아 플라스의 “벨자”의 신경쇠약증 즉 신드롬을 차용함으로써 부조리한 사회체제 내에서 한 여자가 자아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의 어려움과 빠지기 쉬운 희로애락의 함정을 여러 상징물을 통해 묘파하고 있다.
“사랑하는 한, 사랑은 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지후의 태도와 현 가족 체제 내에서 기혼자의 사랑은 죄악일 수밖에 없다는 진희의 태도는 그래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충돌하지만 화해를 꿈꾸고, 화해하기에는 근본적으로 잘못 지어진 옷같이 따로 노는 것 같은 세 사람. 소설은 바로 그러한 모순과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유를 향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2. 꿈, 이카로스의 날개
그녀는 매일 꿈을 꾼다. 마치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소멸되더라도 멈추지 않는.
그녀는 항시 그 꿈을 소망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멸되고야 말 꿈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환상처럼 꿈마다 나타나는 가시들, 그렇게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는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이는 현실의 삶과는 상충되는 무의식이라는 프로이트적 죄의식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녀는 죄의식의 가시에 찔리고, 견고한 공간에 갇힌 벨자 속의 존재처럼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의 곳간 속에 숨어있는 ‘리비도’를 통해 인간본성의 성 에너지를 이해하려 했다. 그것이 인간이 저지른 과오의 면죄부가 되지 못함에도, 잘못된 결과를 해석하는 처방전처럼 사용되곤 했다. 특히 예술 장르에서는 오랜 세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성 본능적 리비도의 노출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판단은 그런 의미에서 유보하기로 한다. 예술이 종교는 아니므로, 그리고 리비도의 본래 성질은 사용자의 억제력에 비례하므로.
이처럼 리비도는 때로 곱게 다스려지기도 하고 사납게 분출되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의 요구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보편타당적 창조관에 의해 세상에 나타난 성 에너지로써 그 존재의미를 갖는다 할까.
이 소설의 도입은 바로 리비도의 불꽃처럼 선연하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것도 ‘로맨스’라는 활옷을 걸치고 화려하게 웃으면서. 불륜이지만 불륜으로 느껴지지 않는 인물들의 사랑은 불쏘시개처럼 스토리에 불을 지른다.
그러나 꿈의 연상은 가시처럼 점점 자라나고 옭아매려 한다. 자유로움을 향한 이카로스의 날개조차도 가시에 얽히고 잘리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시덩굴에 휘말리며, 그 가시덩굴이 아닌 그녀의 몸에서 가시가 돋아나는 꿈을. 자신의 살갗을 뚫고 피를 흘리는. 그 살갗에서 꿈틀꿈틀 가시가 솟아나는 꿈을. 그리고 가시가 돋아날 때마다 느껴지는 그 극심한 통증을.” (p.42) 느끼고 있던 그때, 운명처럼 지후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찬란한 부정의 현실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도대체 이것들이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자신의 심장에서 가시가 되어 자라나는 것일까.”(p.126) 하고 읊조리는 진희는 그 가시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열정, 즉 자신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속에 괴로워한다. 그럴 때마다 진희는 “그래 숨을 참자”고 이를 앙다문다. “숨을 참으면 통증은 사라진다. 오직 숨 쉬려고 할 때만 가시는 살갗을 뚫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숨을 참으면 사그라지지만 숨을 쉬면 다시 자라나는 가시의 통증, 그녀는 그것이 생존의 열정을 상징하는 억제와 발현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가시라고 표현한다. 그처럼 가시의 고통은 고스란히 전편에 숨어든 채 자유혼의 비행을 방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