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이 책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경계에서 삶을 살아간 민초들의 삶의 기록이다. 흔히 '역사는 이긴 자들의 기록'이라 한다. 그런데 이긴 자란 무엇일까? 아마도 강력한 무력으로 침략과 정복을 통해 권력을 잡은 지배자 또는 그 집단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한때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놓았다고 해서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일 수는 없다.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 장강이다. 그리고 그 줄기를 이루는 것은 민초이다. 권력자들이 때때로 자기중심적으로 역사 물줄기를 바로 놓으려 하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항상 민초이다. 그러므로 역사 기술의 대상은 권력자가 아니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끊기지 않고 그 물줄기를 이어 가는 민초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권력자 중심의 역사 기록은 권력자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선택적으로 요리해 놓은 '편파적 기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한·일 간의 역사 인식 문제도 여기에 기인한다. 아전인수식 역사 인식, 주체가 빠진 기록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려 하니 항상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직장 근무로 전라도 광주에서 7년간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순천 왜성을 알게 됐다. 순천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제1번대 대장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왜군의 주둔지로 축성한 성이다. 그런 왜성이 남쪽 해안에 약 서른 개나 있었다 한다. 호기심과 사실 확인을 위해 짬이 날 때마다, 서쪽 순천에서 동쪽 서생포까지 답사를 위해 뛰었다. 400년 이상의 세월의 단절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당시의 전모를 상상하기에 충분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침략의 상징으로 낙인찍혀서인지, 아니면 치욕의 역사로 판단된 탓이었는지, 그대로 방치돼 오랜 세월 진토(塵土―먼지와 흙)에 뒤덮여 있었다. 무너진 성벽과 둔덕을 살피며, 축성에 동원된 민초들의 손때를 더듬었다. 그리고 문헌을 통해 민초들의 흔적을 살펴보려 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영웅, 성웅 등의 영웅담'만이 손에 잡혔다. 임진·정유의 난리 속에서 당시 조선과 일본의 많은 민초들이 어떠한 희생을 겪었으며,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무했다. 주체가 빠진 역사 기록의 현실이었다. 기록에서 권력자와 지배 계급을 걷어내자, 역사의 진정한 주체임에도 편린처럼 다루어지거나, 아니면 기록조차도 없는 민초들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비단 한반도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초에 초점을 맞추자, 이제 더 이상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구별은 의미가 없었다. 답사 지역을 일본으로 확대했다. 일본의 가고시마를 시작으로, 오키나와, 구마모토, 사가, 나가사키, 고토 열도, 후쿠오카, 야마구치, 쓰시마, 시코쿠, 시마네 등을 찾아가 흔적을 뒤졌다. 십 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임진·정유년의 난리 속에서 사망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만 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강제 동원돼 당시 조선에 건너온 왜병이 30만을 넘는데, 무사히 일본에 돌아간 병사는 15만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수 이상인 15만이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거나 주저앉게 된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은 피로인(被虜人)으로 불렸고, 조선에 남은 왜병은 항왜로 불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경위와 관계없이 상대국에 정착한 민초들을 모두 반민으로 낙인찍고, 매도했다. 역사 속에서 민초들이 지배자와 권력자에게 지배당하며 어떻게 희생되어 갔는지, 민초들의 역사를 이야기로 전달하고 싶었다. 이야기의 영어 표현인 스토리(story)의 어원은 역사(history)라는 단어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이 소설은 왜란이라는 사건을 둘러싸고 동아시아라는 경계(境界)에서 살아간 민초들에 관한 역사 이야기다. 권력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연대기를 위한 부차적인 것이다. 『항왜, 두 개의 조국』은 역사적 사실을 날줄로, 민초들의 삶을 상상의 씨줄로 엮어, 민초들을 역사의 주체로 자리매김한 역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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単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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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page
Kakaopage2026/03/03
  • 現在の作品항왜, 두 개의 조국 6권: 성녀, 오타아 쥬리아[단행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