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동료 성기사에게 뒤통수를 맞고 마물의 숲에 조난당한 심정을 아는가?
심지어 그곳에서 악마의 상징인 적안을 지닌 여자까지 마주친다면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이젠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이 별난 악마는 자신을 이웃 나라 사람인 ‘이레네’라 소개하며 친근하게 굴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 인간 행세에 장단을 맞춰 줘야만 한다고.
어차피 마물로 둘러싸인 숲속 오두막은 일개 인간인 그의 힘만으로 탈출할 수 없다.
그렇게 선택권 따위 없이 시작된 숲속의 아슬아슬한 동거.
저 좋을 대로 달라지는 기분과 간혹 그를 짓누르는 살기는 삿된 존재다웠지만,
의외의 순진한 면모와 밝은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불경한 의문이 든다.
눈앞의 ‘이레네’라는 여자는 정말 악마가 맞는 걸까?
* * *
전부 미웠다. 제게 기회라는 이름의 협박을 건넨 악마도, 무능한 신도, 저를 오류투성이로 만든 세상도, 잔인한 운명도.
전부 미워. 전부.
“이드리스 씨, 사실 제가 이드리스 씨를 엄청 좋아하는 거 아세요?”
이레네는 언제나와 같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이드리스의 몸이 경직되더니 곧이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뭉치 어린애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말씀은 너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것 같습니다. 아까 호수에서도 그렇고, 제발 이런 짓 좀 함부로 하지 마세요.”
“너무 정색하시는 거 아니에요? 정말 고백이면 어떡하려고.”
“누가 고백을 그렇게 순수하다 못해 투명한 눈빛으로 한답니까.”
“음험한 눈빛으로 할 순 없잖아요.”
“말꼬리 잡지 마시죠. 이레네 씨가 절 이성으로 안 보시는 것 정도는 저도 압니다.”
‘말은 잘하지. 그러는 그쪽은 날 사람으로도 안 보면서.’
이레네는 삐딱한 생각이 티가 나지 않도록 그저 눈을 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