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2500년 인류사에서 엄선한 고전에서 문학과 철학,
역사학과 인류학,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식의 향연!
오직 성공을 위한 수단이 지식의 유일한 존재 의의일까?
지식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 존재한다
언제부턴가, 성공이 우리들 모두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성공조차 자본주의에 걸맞는, 부와 명성이 따르는 것에 한정된 지 오래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명성. 남보다 우월한 자리에 올라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쓰면서 저 아래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삶.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의 미래는 더 안정된 직장, 소득이 높고 따르는 이도 많아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직장으로 축소되어 있기 일쑤다. 그런 가운데 지식을 함양하고 인성을 기르는 과정인 독서도 ‘더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조차 ‘더 나은 취업, 더 높은 취업률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린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는 실용적 지식은, ‘성공을 위한 필요 수단’으로 선택받으면서 오히려 더욱 위상이 올라갔다. “공부해라, 책도 좀 읽고”라는 말은 살면서 종종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로 꼽힌다. 거기에 생략된 말은 그렇게 지식을 쌓아 그 지식으로 장래에 부와 명성을 쌓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지식의 효용성은 오직 그것뿐일까? '인간을 더 알기 위해'서라는 학문의 첫 시작이자 의의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고 우리들을 경쟁에서 낙오하게 만드는 무의미한 헛소리가 되고 만 것일까?
그러나 이 책, <지식과 교양>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식은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이 지식들이 모이면 우리들 속에서 인간관이라는 게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간관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만들어주며,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이끈다. 인간관은 조금 다르게 말해 인격이라고 말해도 좋다. 지식은 교양을 만들고, 교양은 인격을 형성하며, 인격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그런 우리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독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독서!
지식은 인간을 이해하게 하지만, 교양은 우리를 인간의 길로 이끈다!
부와 명성, 권력이라는 성공에 탐닉해 세상이 삐걱거리고 있다. 미투운동도, 갑질논란도, 묻지마 범죄와 부정부패, 이윤을 위해 사람을 버리는 무한 경쟁의 기업사회까지도 모두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은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그것만이 아닐텐데, 우리 모두 성공이 아닌 다른 목적을 향해 눈을 돌리는 법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인간마저 성공의 수단이 되는 지금, 지식은 더욱 유용한 성공의 수단이 되어 우리를 더 많은 지식, 더 필요한 지식이라는 무의미한 경쟁 속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인터넷의 시대를 지나 주체하지 못할 만큼 지식이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지식의 실용성에만 눈을 돌리기 쉽다. 우리는 지식으로 기술을 쌓고, 그 기술로 부를 달성한다. 때로는 지식에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로 남들을 앞서가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달성한 자신의 부와 편리함을 보며 남들에 비해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이럴 때 우리는 그저 지식이라는 연료로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계와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칸트가 말했듯, 인간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지식을 쌓는 목적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렇게 모인 지식은 그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오히려 지식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며, 그럴 때 지식은 더 나은 세상을 이끄는 긍정적인 수단이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지식의 교양화다.
책은 지식을, 지식은 교양을 만든다. 지식은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게 하며, 교양은 우리가 인간의 길을 걷도록 이끈다. 인간이라는 나무! 인격을 뿌리 삼아 자라는 나무가 인간성의 가지를 뻗으면, 그 가지 끝에서는 존엄성이라는 열매가 태어난다. 그리고 나무는 모여 숲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