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골목 어귀에 자리한 작은 세탁소. 한때는 흰 셔츠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반짝이던 공간이었다. 라면 김이 오르고, 드라마 대사가 울려 퍼지던 저녁이면 혜선과 할머니의 삶은 단단히 붙들려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세탁소의 풍경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점점 혜선의 이름을 잊어가고, 장부 위에는 ‘내일’이라는 글자가 불길하게 반복된다. 그리고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할머니. 그 곁에서 혜선은 점점 알 수 없는 불안과 마주한다. 《세탁소의 기억》은 일상의 가장 평범한 공간이 어떻게 한순간 낯설고 불가해한 장소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치매라는 현실적 그림자와, 그 안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신비로운 사라짐의 모티프가 겹쳐지며 작품은 기억, 상실, 그리고 사랑의 문제를 파고든다. 무너져 가는 일상과 함께 “내일은 오지 않는다”는 불길한 예언 속에서, 혜선은 과연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라져가는 사람과,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남겨진 자는 어떤 내일을 마주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