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이전의 나는 죽어버렸다 능동적 자발성을 갖고 깨어난 움츠려 있던 몸, 완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원초적 뿌리! 섹스와 몸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황폐화된 산업사회 속 인간은 정처 없이 헤매는 존재가 되리라 원초적 건강함을 되찾아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모색하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플로렌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즉각 영국과 미국에서 판금이 되어 무수한 해적판들이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서양 서적의 번역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던 일본에서 이 책의 번역을 둘러싸고 1950년부터 무려 7년 동안이나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미국과 영국 법정에서 면죄부를 얻기 이전부터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또한 영국에서 면죄부를 받은 이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여지없이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호주가 그러했고 캐나다가 그러했으며 영연방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들과 연인』(1913), 『무지개』(1915), 『사랑에 빠진 연인들』(1920) 등의 뛰어난 작품으로 이미 대작가의 명성을 얻고 있던 로렌스가 병마와 싸우는 힘든 상황에서 원고를 두 차례나 다시 쓰는 등 심혈을 기울인 작품, 게다가 그의 마지막 장편 소설인 이 작품에 대해 왜 그러한 논란이 벌어졌던 것일까? 한 마디로 이 작품이 과연 외설(猥褻)인지 예술(藝術)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 작품에 대한 외설(猥褻)과 예술(藝術) 논쟁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아직도 심심치 않게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외설과 예술의 기준은 시대적 인식과 도덕적, 윤리적 잣대의 변화에 따라 지극히 가변적이며 오늘날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큰 틀 안에서 대체로 거의 모든 표현이 허용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세계 명작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 외설적인 작품이 아니라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되풀이해 강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D. H. 로렌스라는 대소설가가 그런 논쟁이 벌어질 것을 빤히 알면서도 왜 이렇게 외설에 가까운 소설을 썼는가 하는 점에 우리는 더 관심이 간다. 단순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 젊은 데뷔 시절 그랬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황혼기의 작가에게 그런 이유는 별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그보다 절실한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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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page
Kakaopage2025/04/07
  • 現在の作品채털리 부인의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