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학교 폭력에 의해 건물에서 추락한 빈곤한 소년 ‘정택진’.
기억을 잃은 그에게 남은 건 ‘추낙원’이라는 가해자의 이름이 유일하다.
일찍이 잘못을 시인하고 퇴학 처분을 받았다는 소년의 이름만이.
숨 막히는 억울함 속에서 살아갈 길이라고는 불타는 복수심과 희미한 기억을 향한 의구심의 해갈뿐이다.
정택진은 추낙원을 찾아가 복수를 선언한다. 부정하거나 달아날 줄 알았건만, 추낙원은….
“네가 바라는 대로 해 줄게, 정택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절대 복종을 약속한다.
“대신 나랑 약속 하나만 해.”
“…무슨 약속.”
“끝까지 하는 거야, 나한테 전부 되갚을 때까지.”
그것도, 줄 쥔 손을 놓을 수 없는 기묘한 복종이다.
***
발소리가 멀어지고 마침내 펜스가 철컹 흔들리며 열렸다. 추낙원이 떠나가는 소리였다. 정택진은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눈시울이 당겨 무심코 손이 올라갔다.
됐다, 복수고 뭐고 다 그만두자.
기억을 찾는 것도, 추낙원을 추적하는 것도.
저 애처럼 변하든, 저 애 때문에 이상해지든.
다 그만두자고….
정택진은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복수를 포기하고, 미봉된 과거를 완전히 태워 버리고, 추낙원이 ‘전화위복’이라고 했던 새 삶을 받아들이려고.
추낙원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제 계획을 현실에 옮겼을 터였다.
“…너 우는 거야?”
어느 틈엔가 돌아온 추낙원의 거친 손끝이 정택진의 손등을 살며시 건드리고 있었다. 정택진은 울고 있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눈가를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고작 그뿐임에도 추낙원은 떠나다 말고 방향을 바꿔 정택진에게 돌아온 것이다.
정택진은 한없이 멀쩡한 낯을 보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이대로 얼굴을 들면 추낙원이 환영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그의 돌변이 너무도 달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망설이던 추낙원은 마침내 정택진의 어깨를 잡으며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라고 한 소린 아니었어.”
그가 손끝으로 정택진의 어깨를 문지르며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이게 왜 너한테 슬픈 말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