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빙의물 #역키잡 #약피폐 #쌍방구원 #집착공 #계략공 #광공 #수한정다정공 #찌통공 #황태자수 #무심수 #악역수 #계략수 #찌통수
●공: 에단 솔리아르 – 악으로부터 스펠란드 제국을 지켜 낸 영웅이자 솔리아르 공작의 사생아, 펠리오의 몸에 들어간 이방인을 우연치 않게 돕게 된다.
●수: 펠리오 드 스펠란드 – 제국 내 망나니로 불리는 황태자의 몸에 들어간 이방인,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믿는다.
‘공작은 오늘도 살고 싶다’라는 소설의 악역에 빙의했다. 황제가 된 후, 에단의 손에 죽는 바로 그 미치광이 황태자로.
이곳에 빙의한 후부터 줄곧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온 말들이 있다. 현실로 돌아가. 이곳은 지옥이다. 확실하게 죽어야만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만큼 단호하고 구슬픈 음성에, 나는 그저 그것만을 따라 달렸다.
하지만 어떤 짓을 해도 죽을 수 없었던 불사의 몸. 무너질 대로 무너진 나의 마지막 희망은 소설 내용대로 주인공인 에단에게 숨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보다 이른 시기에 에단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그를 나의 구원자라고 여겼다.
“살아라. 성년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
에단이 성년이 된 날, 그가 나를 죽이는 것이 이 소설에서의 내 운명이었으니까.
“기사단장에게 네 검술 교습을 부탁해야겠군.”
한 번에 목이 잘려야 덜 아플 테니까.
“그래. 난 매일 이렇게 술로 밤을 지새워.”
내가 황제가 될 그릇이 아니라는 걸 에단이 알아줬으면 싶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에단이 성년이 된 날, 그는 나의 침소에 찾아왔다. 한 손에 검을 쥐고서. 고대하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에단의 두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전하께서는 제가 전하를 죽이길 원하시죠. 늘 저를 구원자라고 부르셨잖아요.”
소설에는 없던 내용이지만 대강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랬지.”
“……저는 전하를 가지고 싶습니다.”
“내 목숨은 이미 네 것이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데에 도가 트셨군요. 제 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죽이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하께서 제게 틈을 주지 않으시니……. 어쩔 수 없겠군요.”
불안한 감정이 넘실거렸다. 이내 에단의 광기 어린 눈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제가 전하를 죽이지 않으면, 전하께서는 평생 제 옆에 남아 계시겠죠.”
“……뭐?”
***
“……그래, 그 정이 연정만 아니면 되었다.”
에단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펠에게 물었다. 높낮이 없는 음성이 펠의 귓속을 통과했다. 그것은 조금 놀랍기도, 그리고 심장이 떨어질 것 같기도 한 질문이었다.
“연정이라면요.”
갑자기 가슴께가 아렸다.
펠은 생각했다. 언제부터였더라, 이런 이상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게. 에단이 처음으로 황궁에 들어온 날, 카렙에게 당한 상처를 보고 제게 성을 냈을 때부터일까. 처음엔 그저 시큰거리고 말던 것이, 이제는 통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펠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에단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저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전하.”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연정은 무슨 연정입니까, 사내들끼리.”
에단은 웃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