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당신은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바이엔이 한 발자국만 남겨두고 레이나 앞에서 멈춰 섰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가느다란 몸을 굽어보며 선언했다.
“그 쓰레기 자식과 결혼하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내 복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용건을 마친 바이엔은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천천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느릿하게.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를 도와줄 건가요?”
걸음을 멈춘 바이엔은 시선을 내렸다.
레이나의 손이 마지막 자비를 구하듯, 팔에 매달려 있었다.
“이대로 헬츠버그로 돌아가면, 나는 정말로 네하이머스 공작과 결혼해야 할지도 몰라요.”
바이엔의 시선은 레이나의 가느다란 손목을 타고 팔을 거슬러 올라, 연초록색 눈동자에서 멈췄다.
두려움으로 잘게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확인한 바이엔은 확신했다.
그때 그 순간, 안대에 가려졌던 눈동자는 간절히 구원을 갈구하며 떨고 있었겠지.
바로 지금처럼.
바이엔은 되돌아온 처음의 순간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질문했다.
“글쎄. 어떤 사례를 받아야 당신을 도울 마음이 생길까?”
바이엔은 고개를 젖혀, 단조로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그녀가 원한다면 기꺼이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더 이상 무상의 자비를 베풀지 않으리라는 것뿐.
결정을 내린 바이엔은 일부러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당신, 레이나 헬츠버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