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역사를 화소로 삼아 말과 국가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에 꾸준히 천착해온 황모과 작가가 다산책방에서 새로운 디아스포라 SF 소설 『그린 레터』를 선보인다. 『그린 레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디아스포라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제인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펴낸 소설집 『보통의 우리』에 수록된 「그린 레터」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으로, 얼음산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륀’이 키우는 사람의 메시지를 잎맥에 새기는 식물 ‘비티스디아’를 해독하며 자신의 뿌리인 쿠진족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을 그렸다.
흔히 시간이 지나면 아픔도 무뎌진다고들 하지만,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픔의 감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무뎌질지언정 그 상처는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아픔이기 때문에, 황모과만의 섬세한 접근은 더욱 빛을 발한다. 꾸준히 SF를 써온 황모과는 특히 현실에 굳게 뿌리내린 SF를 선보이고 있다. 먼 장소, 먼 미래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은유하는 게 아닌 지금 현재, 혹은 근미래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가상의 국가와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린 레터』가 우리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그린 레터』의 많은 부분은 실재에서 착안했다. 잎을 편지로 선물하는 것은 중국 징포족의 문화를 모티브로 하여 변형했고, ‘그린 레터’라는 제목은 미국 비자 신청 시 서류 미비 등의 이유로 발급 거절을 통지하는 용지를 ‘그린 레터’라고 부르는 것에서 가져와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린 레터』는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 세계의 사건을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불러들이는 방법이며 지나간 역사를 현재로 호명하는 작업이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지금 이곳에서 출발하여 뻗어나간다. 그리고 조금 느릴지라도 확실하고 정확하게 되짚어온다. 이것이 황모과의 세계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