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슬복슬한 새하얀 털. 짧뚱한 네 개의 다리, 분홍 젤리가 콕 박힌 발바닥.
어쩌다 원작에서 언급 한번 없던 새끼 강아지로 환생한 거야?
온통 눈으로 쌓인 숲길에 쓰러져 있던 나를 주운 건 애정하던 소설 [그 영애가 약혼자를 고르는 방법] 속 서브남이자 악역 드윈 대공.
전장의 악마, 북부의 괴팍한 주인. 그리고 여주인공만 바라보다 끝내는 악역으로 돌변해 남주의 손에 죽어버리는 비운의 서브남.
그런데 그가 이상하다.
하찮다는 듯 바라볼 때는 언제고, 왜 웃어? 왜 빤히 바라보는 건데? 왜....예뻐해주는 건데!
어쨌든 그의 반려견이 된 이상 그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이왕 곁에 두실 거면 이름쯤은 지어주셔야지요. 좋은 이름을 지어줘야지 오래 산다고 합니다.”
집사인 노먼의 말에 대공은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책장을 하나씩 넘겼다.
그러던 그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책의 내용을 한번 살펴보다가 나를 다시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 그 행동은 계속 반복됐다.
어느새 노먼도 대공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었다. 무언가 의아한 듯 두 사람 모두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 기울였다.
“이 아이는...도대체 어떤 견종일까요?”
노먼이 정말 의아하다는 음성으로 책 속 무언가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이 견종을 닮은 것 같습니다.”
“말티즈..?”
“그것보다는 푸들이라는 견종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귀가 쫑긋 솟은 걸 보니 포메라니안이라는 견종과도...”
대공과 노먼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하나로 딱 정의할 수 없는 견종의 집합체가 눈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은식기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내가 봐도 이 몸의 조상은 여러 견종을 아우르는 게 분명했다. 핏줄과 가문을 중요시하는 고위 귀족 가문의 대공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더 찾아볼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대공이 노먼에게 책을 넘겨주었다. 노먼은 천천히 책의 내용을 읆었다.
“간혹,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견종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믹스견....이라 부르기로 했다? 허허 이것 참.”
대공의 낯이 싸늘해졌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 생각이란 게 나쁜 쪽으로 많아보이는 게 문제였다. 다시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이름은 뭐로 하는 게 좋을까요?”
“어떤 핏줄인지도 모르는데, 이름이 꼭 필요한가?”
당장이라도 이름을 지어줄 것 같던 행동을 싹 지운 그가 노기 서린 표정으로 나를 흘겼다.
“앙왕!”
나는 이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믹스견이라고 해도 이름 정도는 지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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