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 했다. ‘아직까진’ 이름 모를 소설 속으로.
“리, 린지. 요, 요즘 왜 나 안, 찾아? 이제…… 우, 우리 집 주방장이 만드는 초, 초코 타르트 안, 먹고 싶어?”
몰랐는데, 이 몸의 주인은 정말 악질이었나 보다.
빙의 후 며칠 간 아카데미를 다니다 보니 ‘마틴’이라는 꼬붕이 생겼다.
‘나쁜 계집애.’
난 연한 금발이 눈을 가릴 정도로 덥수룩이 자란 그 아이를 슬쩍 보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 이제 필요 없으니까 가. 그리고 나한테 이렇게 하지 마.”
얼른 이 악의 굴레에서 탈출해, 얼른!
그런 내 말에 마틴은 눈치를 보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자꾸만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난 알 수 없는 외국어가 가득한 책으로 고개를 박았다.
정말. 도통 제목을 알 수 없는 소설이다.
* * *
이제야 마틴과 겨우 친해졌는데.
그는 수도에 올라간다며 마지막으로 날 찾아왔다.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단다.
“나, 나, 나 말 더, 더듬는 것도 고, 고칠, 게. 나, 남자가 되, 될게……!”
“그럼 뭐, 니가 여자냐. 조심히 가. 편지 할게.”
편지를 한다는 내 말에, 마틴의 녹안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 녹음이 가득한 눈빛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 * *
“린지.”
분명, 난 재무 서류를 건네주러 가는 길이었는데 황실 복도에서 만난 제 1황자 전하가 날 불러 세웠다.
상관이…… 나 따위의 이름을 알아……?
당황한 나는 고개를 숙이며 멍청하게 말을 더듬어 버렸다.
“네, 느에, 네……. 저, 전하…….”
그런 내 모습에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황자 전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말 더듬는 건 내가 아니라 네가 고쳐야겠는데. 안 그래, 린지?”
그런 황자의 말에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근데, 그게 무슨 말이지?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황자 전하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린지, 언제까지 널 기다려 줘야 해. 아직도 모르겠어?”
그의 말에 고개를 다급히 들어 올리자, 황자 전하가 짙은 녹안을 빛내며 말했다.
“나잖아, 마틴. 아직도 내가 남자로 안 보여? 큰일이네.”
날 바라보고 있는 그 한여름 숲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그제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 했다.
아아, 그럼. 이 제국의 황자이자, 소설 속 폭군 남주가 바로 우리 반 너드였구나!
x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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