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결혼을 약속한 연인은 전쟁포로로 끌려갔고, 노예처럼 부려먹던 예비 시댁에선 버림받았다.
숨겨왔던 힐러의 힘을 사용하며 남장까지 했지만, 다시 찾은 연인의 옆자리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
“너는 내가 달갑지 않구나.”
한 차례 자신의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흐트러트린 닐은 그제야 리엘의 목소리가 점점 더 차분해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5년간 그 고생을 했음에도 백작 부부에게서 버림받고 홀로 너를 찾았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한 걸까.”
“…….”
“그렇게 다른 여인의 눈물을 닦아줄 거라면, 내게 결혼하자는 소린 하지 말았어야지.”
“그건…… 그냥 호위 기사로서의 예를 지킨 것뿐이야.”
“……호위 기사로서의 예의? 내가 너를 몇 년 봤는데, 그 눈빛 하나를 못 읽을까.”
리엘의 입술 끝,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진한 보랏빛 수국을 주며 고백하던 닐을 다시 찾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십 년 전 악몽을 되살리면서까지, 이전의 생활로 두 번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너를 찾으려 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무척이나 실망스럽고, 후회스러웠다.
“알겠으니. 그만 놓자.”
“……!”
“나도 더는 미련이 없을 것 같아.”
표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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