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티르데. 신이 아니라 내게 빌어야지.” 면사포 아래로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칼을 보며 카를이 조소했다. 예배당 단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티르데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었다. 신이 아니라 카를에게 빌어야 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라버니들이 도박장에서 당신이 내 몫으로 준 땅과 별장을 잃었고, 언니의 사치로 도시 곳곳에 내 이름으로 달린 엄청난 외상이 있고, 그걸로 모자라 당신과 혼인 중임에도 어머니는 새로운 혼처를 찾아댔다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카를은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티르데를 훑더니 예배당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그녀를 관망했다. “그대의 신은 무능력하군. 빌기 전에 들어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어찌 그런 불경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대의 신이지 나의 신은 아니어서.” 카를이 사자 문양이 박혀있는 은색 갑에서 시가를 꺼내 물었다. 희뿌연 연기가 티르데를 감싸더니 점점 희미해졌다. “말해. 그대의 신에게 무어라 빌었는지.”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칼에 형형하게 빛나는 잿빛 눈. 티르데는 순간 카를이 자신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러 온 추방된 천사 루치페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의지로 떨어졌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끌어 내렸을까.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저미는 것 같았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수천 개의 바늘이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을 끌어 내린 것, 당신이 신을 믿지 않게 된 것, 그걸로도 모자라 당신을 지옥에 처박은 것. 모든 시작은 바로 나였다. 잘못을 인정한다 한들 당신은 나를 용서할까. 내 몸에 당신이 그렇게 경멸하는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아도 당신은 나를 여전히-. 여전히 나를 고결하다 생각할까. 표지 ; 핀터레스트 mail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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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ra
Joara2023/12/06
  • 現在の作品고결한 그대에게 경멸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