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빙의하자마자 죽기 직전이다.
“영애는 백작을, 그대의 아버지를 배신하는 건가?”
“예!”
기다렸던 질문에 신속한 답변과 맹렬한 끄덕거림으로 응하자 그는 더욱 황망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날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나는 반역을 저지른 백작의 딸이 아닌 이 몸에 빙의한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끔찍한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엑스트라로 빙의했다.
이어지는 미래는 체험형 교수형과, 고된 노예생활, 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하하하하. 이렇게 끝이라고? 아니. 난 살아야겠어.
온전히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 눈앞에 있는 제국 최고위 귀족 아펠리온 대공을 바라보며 쇠창살을 더욱 세게 틀어쥐었다.
“저를 대공 저하의 노예로 삼아주십시요!”
“잘도 그런 소리를 부끄럽지도 않게…”
“제 미모가 훌륭하다 하여 저를 취하신다 하시지요!”
그가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채,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이번에는 정신 나간 여자라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서던 나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대공의 몸이 내 위로 기울어지며 내 머리옆을 손으로 짚었다.
자색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붉은 가운을 벗어내렸다.
얇은 셔츠 위로 탄탄한 가슴팍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누가봐도 수상한 시간에 수상한 상황에 놓였다.
조각같이 아름다운 남자의 얼굴이 점차 다가왔다.
아니, 지금 이 상황은 설마. 아니 이건!
나는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한채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저, 저기, 이게…”
“조용히.”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세상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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