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9년을 사랑했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시 사랑 따위는 없을 거라 맹세했다.
각박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34살의 이민영.
그녀 앞에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난다.
김희수. 민영의 여고 동창생이었다.
처음 희수를 보았을 때 민영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수많은 동창생 중 한 명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희수와의 우연한 만남이 거듭될수록 민영은 묘한 익숙함을 느끼고 희수의 눈빛에서 잊으려 했던 지난날의 한 아이가 떠올랐다.
너였구나, 너였어.
애써 기억에서 지웠던 얼굴, 그게 너였어.
무심결에 너를 지켜보던 내 시선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태연의 신경질이 바로 너였어.
태연을 위해 애써 무시했던 그 시절의 그 아이, 그게 너였어.
민영의 가슴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파도가 일렁이고 남의 여자가 될 희수를 향한 마음은 나날이 커져가는데.
***
“그거 몸에 좋지 않은데, 끊는 건 어때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기함하며 고개를 돌렸다. 빙그레 웃고 있는 희수의 맑은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냄새도 별로잖아요.”
민영은 손에 든 담배를 급히 재떨이에 눌러 껐다.
저 여자가 왜….
민영의 당황한 모습이 재밌었는지 희수가 낮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직 연기가 피어나는 담배꽁초를 눈으로 가리켰다.
“나도 전에 조금 피워봤어요. 그런데 별로더라고요. 끊은 지 한 5년 됐나? 그런데 다시는 안 피려고요.”
“아… 네….”
역시나 생긴 대로 차갑고 독한 여자가 맞나 보다. 그 끊기 힘들다는 금연을 한 것을 보니.
민영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슬금슬금 자리를 이동했다. 한시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할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민영은 허둥대는 몸짓으로 희수의 곁을 빠르게 지나치려 했다. 순간.
“그러니 너도 한번 끊어봐. 이민영.”
뭐? 민영의 몸이 그대로 굳은 채 걸음을 멈추었다.
‘이민영? 분명 나를 부른 게 맞지? 이 여자… 나를 알아……?’
분명 여자의 입에서 이민영이라고 이름 석 자가 정확하게 나왔다. 어째서? 왜? 나는 이 여자한테 이름을 밝힌 적도 없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민영에게 희수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왜? 놀랐어?”
싱긋 웃는 희수의 모습에 민영은 더욱 기겁하며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저를 아세요…?”
떨리듯 물어오는 민영의 질문에 희수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는 빗물에 뽀얀 손끝을 갖다 댔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하얀 손끝에 이슬처럼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