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가 짝사랑하는 왕녀를 위해 스스로를 바다에 봉인하는 약피폐물 로판에 빙의했다.
문제는 내가 소설 속에 단 1줄도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라는 것!
게다가...
"대체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어디여, 섬이지. 쪽섬."
내가 섬에서 바지락이나 캐며 사는 시골 처녀라고?
엑스트라도 엑스트라 나름이지. 난 바지락이나 캐다가 늙어 죽고 싶지는 않다고요!
나는 마침 배를 몰고 쪽섬에 방문한 루펠렌 대공에게 애원했다.
“대공님! 저 좀 배에 태워 주세요. 이 섬에서 내보내 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저를 배에 태워 주시면 이런 거 매일 먹게 해 드릴게요.”
나는 마법으로 갯벌을 마구 파헤쳐서 싱싱한 산낙지를 건져올렸다.
낙지를 물끄러미 보던 대공이 말했다.
“좋아, 내 배에 널 태워 주지. 단, 잊지 마. 분명히 네가 ‘매일’ 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대공과 덜컥 계약을 맺고 말았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끝나질 않는다?
“대공님, 우리 계약은 언제 끝나나요?”
“대공저에 돌아갈 때까지는 네가 ‘매일’ 요리를 해 준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대공저에 언제 돌아가시는데요?”
“글쎄?”
악덕 고용주 대공은 집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게다가 계약에 묶여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어딜 가려고? 넌 내 곁에 꼭 붙어 있어야지, 지아나.”
대공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게 우리의 계약 아니었나?”
대공이 계약을 빌미로 내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
드디어 대공저가 코앞이다. 이제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계약 종료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방금 대공저에 큰 불이 났습니다!”
“뭐라고요?”
아연실색한 내 앞에서 함께 소식을 듣고 있는 대공의 표정이 왠지 즐거워보인다?!
“이런. 대공저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돌아갈 집이 사라졌으니 계약도 끝을 낼 수가 없게 되었군? 아, 안타까워라.”
로봇도 그렇게 딱딱하게 연기하지는 않겠다!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미소를 짓는 대공을 보며 난 속으로 절규했다.
‘누가 저 미친 대공 좀 뜯어 말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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