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나는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의 11월 11일, 조그마한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경치 좋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우리 고장 통영이다.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고, 동생 창민도 태어났다. 위로는 큰형님 창범과 작은형님 창명, 두 형님이 있었다. 나는 바닷가에 살았으므로 다섯 살 때 수영을 배웠다.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우리 집안에 경사가 났다. 여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이름은 순이다. 이때부터 내 일이 많아졌으니 비로소 철이 든 모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 넷 가운데 첫 딸을 얻으니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이 때문에 우리 집안은 웃음꽃이 활짝 피게 된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돕기로 작정하였다.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줌동이를 이고 척골의 조그마한 밭에 거름으로 오줌을 주러 간다. 나는 조그마한 지게를 지고 어머니 뒤를 따라다녔다. 집에서 약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이다. 밭에서 나오는 야채며, 무, 호박, 옥수수 등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식구를 먹일 정도는 되었다.집에 오면 아이보기, 집안 청소하기, 어머니 심부름을 하였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고, 큰형님은 직장에 나가고, 작은형님은 학교에 간다. 모두 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또 밭에 간다. 동생 창민이는 이웃 아이들과 잘 논다. 어머니는 밭에 나갈 때마다 밥물에 설탕을 타서 밥그릇에다가 숟가락을 얹어놓고 나간다.“아이 울거든 조금씩 떠 먹이거라.”나는 외롭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가 운다. 아무리 밥물을 떠먹여도 운다. 아이를 업는다. 업고 달래도 운다. 나도 같이 운다.‘엄마가 빨리 와야 할 텐데!’우는 소리를 듣고 이웃사람이 와서 도와준다.“너희 어미가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저리 고생한다.”아이를 안고 자꾸 얼러준다.“야, 요년 봐라, 잘 생겼구나. 많이 먹고 어서어서 커서 네 엄마 도와줘야지”아이가 웃는다.“야, 웃는다.”나도 웃는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