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믿었던 두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남은 평생을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라고 생각했던 소꿉친구가 한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 술은 잔뜩 들이키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내 인생과는 달리 저 멀리 떠있는 달은 어찌 저리 밝고, 흐르는 강물은 왜 저리 평화로운지.
야속한 마음에 한탄이라도 하고자 난간 위에 올라섰다.
그러다 그만.
"으, 으악, 아아아아악!!!"
한강물로 고꾸라졌다.
그런데 눈을 떴더니.
"아가씨!"
배신한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로맨스판타지소설 속 인물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악역으로.
차라리 잘 됐어, 그냥 여기서 잘 살아보는 거야.
* * *
"하아-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같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그가 재미있어, 비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진짜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고, 그만큼 행복하다는 뜻이었어요."
"너무 행복해서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해주는 게 듣기는 더 좋을 것 같아."
"하하, 앞으로는 그렇게 말할게요."
내 대답에 그의 표정은 금세 부드러워졌다.
마구잡이로 눕느라 헝크러진 머리를 살살 정리해주는 그의 손길이 민망스러워, 괜히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너무 힘든 날이었는데, 행복했던 날을 떠올리니까 그때 죽었더라면 내 마지막은 행복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요. 지금 너무 행복하니까 이후에 올 불행이 조금 걱정이 돼서 한 말이였어요."
내 말에 한동안 대답이 없던 그는, 머리칼을 만지던 손을 거두고 몸을 들어 내게 눈을 맞춰왔다.
또렷이 맞춰오는 그의 따뜻한 눈동자는 마치 물을 가득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평생 행복하게만 해주겠다는 말은 못해,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네가 불행할 때도 행복할 때도 곁을 지켜줄게."
그의 어두운 목소리가 당황스러워 눈만 껌뻑이고 있자, 그는 작게 숨을 들이 마시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마."
전엔 못마땅하기만 했던 그의 강한 어조가, 지금은 왜이리 믿음직스럽게 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진지한 분위기를 깨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해요. 계속 살아내고 싶어요, 오래오래. 다음 행복이 또 올 때까지."
"그대의 다음 행복에도 내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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