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해주지 않겠어?”
유희를 위해 내려온 인간계에서 만난 평범한 소녀. 평범한 인간과 엮인 마물들의 말로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정체를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으리라 여겼다.
그 정도로 나는 눈앞의 녀석에게 빠져 있었다.
귀찮은 의무니 책임 따위를 짊어져야만 하는 무료하고 따분하기만 한 나날도, 이 소녀와 함께라면 제법 다채로울 것 같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좋아, 생각해볼게.”
문제는 내가 이제 갓 즉위한 마왕이고.
“……네가 용사라고?”
내가 청혼한 소녀가 인간계를 지키는 용사라는 거지.
드넓은 평원에 모여 있는 인간 병사들 앞에서 싸우는 여인을 보자마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중갑옷을 입고 멋들어지게 검을 휘두르는 여자의 금빛 포니테일이 바람에 휘날렸다. 커다란 대검을 마치 작대기 하나를 든 것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행태에 헛웃음을 금치 못했다.
어쩐지 인간 소녀답지 않게 힘이 세더라니.
어쨌거나 마계를 지켜야 하는 입장인지라 있는 힘껏 싸웠지만, 어느 새 나는 피투성이의 몸으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내 목에 칼을 겨누는 용사의 파도를 닮은 푸른빛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니 되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래, 처음으로 반한 여자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
“진짜 죽을 생각이었어? 유리.”
“……어?”
“넌 내 남편이잖아. 목숨 아까운 줄 알아야지.”
빼앗긴 것은 목숨이 아니라, 입술이었다. 씩 웃고 있는 해맑은 얼굴을 보니 기가 막혔다.
잠깐만, 우리 언제 결혼한 건데?
*
“역시, 이렇게 되나.”
나직이 중얼거리며 남자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검게 변한 피부와 머리에 자란 뿔, 새까만 날개 한 쌍이 그의 등 뒤로 펼쳐졌다. 마왕답게 엄청난 위압감을 몸에 두른 그의 새하얀 머리칼이 움직임을 따라 흔들거렸다.
“자, 그럼…….”
온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무정한 핏빛 눈동자에 금빛 머리칼을 가진 소녀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그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일행에게, 정확히는 플레아를 향해 겨누며 읊조렸다.
“리턴 매치를 시작할까,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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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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