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전리품 취급하지 마십시오. 엄연한 그대의 남편입니다.”
볼모로 팔려 온 패전국의 왕자는 더없이 아름답고 고고했다.
초면에 초야를 치르게 된 서먹한 밤.
왕자는 얇은 실크 가운을 단단히 여미면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를 취할 겁니까?”
그러다가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내 옷소매를 붙잡고 매달렸다.
“여기만 아니면 됩니다. 하아, 제발, 날 밖으로 꺼내 줘요.”
악몽 속에서 그는 내 어깨까지 부여잡고 헐떡였다.
이 처연하고 무기력한 비운의 왕자를, 내가 가진 힘으로 지켜 주고 싶어졌다.
정치적 입지가 약한 후궁 소생이라는 이유로 내게 팔려 온,
그에게는 참 부당하고 억울한 결혼이었으니까.
***
사랑 없이도 원만하게 잘 살아보려 했다.
내연녀로 추정되는 이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왕자가 내 비밀 전당포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가발과 베일로 정체를 숨긴 내 앞에, 왕자는 반짝이는 귀금속을 우르르 쏟아냈다.
하, 내가 그에게 준 결혼 패물이었다.
“돈을 빌려서 어디에 쓰려고 하죠?”
“여동생을 구출해와야 합니다. 그 아이가 머무를 곳도 필요합니다.”
……이 X끼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부렁이야?
나는 안다. 패전국의 막내 왕자였던 당신에게 여동생 따윈 없다는 걸.
이왕 이렇게 된 것, 일단 넘어가 주는 척하며 낱낱이 밝혀주지.
한 떨기 제비꽃처럼 청초한 얼굴, 그 한 꺼풀 뒤에 숨겨진 발칙한 민낯을.
***
이상하다.
그날 이후 왕자가 내 비밀 전당포에 너무 자주 찾아온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는, 섬세한 손끝으로 나의 베일을 어루만진다.
“한 번만 벗어 보면 안 될까.”
같은 침대에 누워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보여 줘. 그대의 눈동자 색이 궁금해.”
갈급한 음성이 내 숨통을 죄어들었다.
……미친 건가? 내연녀는 어쩌고 애먼 나한테 이래? 불륜남 재활용하는 취미는 없는데?
그렇게 왕자는 내가 거짓을 한 꺼풀 뒤집어쓰고 있을 때 다가왔다.
내 정체를 까맣게 모르는 채로.
가만, 정말 모르는 것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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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고 청초한 은발자안 패전국 왕자 X 능력 충만하나 허당기 있는 승전국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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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우비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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